거창에 가면 ‘번개팅’에 익숙하고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르는 귀농인들이 있다. 바로 인터넷 카페 ‘산천수’의 회원이자 거창군귀농인연합회원들이다. 자신들을 형제보다 자주 만나는 사이라고 소개하는 이 단체는 ‘멘토제’를 통해 거창군으로 유입되는 귀농인들의 사기를 북돋는 데 일조한다. 사과나무가 마른 가지를 드러낸 봄의 초입에 만난 그들은 시종일관 유쾌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거창의 명물 산천수(山川水)
2006년 고향으로 귀농한 박병오 씨는 닉네임 ‘평화바람’으로 통한다. 거창에 도착한 후 찾아간 농업기술센터에서 그는 훗날 닉네임 ‘참새’로 불릴 정갑수 계장과 운명적인 조우를 한다. 교육 및 생활 전반에 대한 컨설팅을 받은 박 씨는 정 계장과 막역한 사이가 되었고, 후배 귀농인들에게 도움을 줄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인터넷 카페 ‘산천수(山川水)’. 정갑수 계장은 카페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박병오 씨는 선출 과정을 거쳐 연합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산 좋고 강 좋고 물 좋은 청정지역 거창에서 착안한 카페 명은 예비 귀농인들 사이에 화제를 몰고 왔다. 전국적으로 귀농 담당 공무원이 카페를 만든 유래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 또한 산천수의 명성에 힘을 보탠다. 더구나 귀농을 장려하는 거창군의 정책상 현직 공무원과 선배 귀농인의 의기투합은 실질적인 정보 제공을 보장하고 있다.
카페 ‘산천수’ 덕분에 거창에 메리트를 느낀 예비 귀농인들은 어렵지 않게 1:1 멘토링을 받을 수 있다. 그들이 주목하는 점은 현지 귀농인들의 적극적인 자세다. 지역민의 텃세를 두려워하는 만큼, 자신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현지인들의 노력은 감동으로 다가오기 충분하다.
집은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농지 임차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효율적인 작목 선택은 무엇인지 일일이 가이드하는 산천수 회원들의 활약은 오프라인까지 진출한 상태. 이름 하야 ‘거창군귀농인연합회’다. 사실 카페 개설은 귀농인의 바쁜 스케줄상 연합회 활동이 어려울 것을 짐작해 예비한 중간 단계였다. 그러나 거창 일대 귀농인의 정성스러운 온라인 활약은 오프라인 못지않은 명성을 안겨줬다. 이제 포털 사이트에 ‘귀농 준비’를 검색하면 상위권에 ‘산천수’의 이름이 등장할 정도다.
인생은 생방송, 귀농 방송 또한 생방송!
거창군귀농인연합회가 공들여 활동하는 ‘산천수’의 자랑은 귀농 방송국. ‘주몽이 들려주는 알콩달콩 귀농이야기’라는 프로그램명으로 매일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전파를 탄다. 여기에는 ‘주몽’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박성주 씨의 역할이 컸다. 물론 카페 회장인 정갑수 계장의 도움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연합회의 특징은 저마다 자신의 특기를 살려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 특히 도시에서의 직업은 연합회 차원에서 실시하는 봉사활동에 커다란 동기부여가 된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능력기부’라는 이름으로 마을 주민의 머리를 손질하고, 스포츠 마사지를 하고, 검도를 가르치고, 가전제품을 수리하며 친목을 다지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인터넷 방송회사에 근무했던 박 씨도 방송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기부하기로 했다.
매일 생방송으로 이뤄지는 만큼 목 관리는 필수라는 주몽, 박성주 씨. 읍면별로 분포한 기자단이 업로드 하는 거창군의 대소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신청음악을 틀기도 하고, 농사짓는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대화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생방송은 카페 회원 유입 창구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작년 10월 2일을 시작으로 어느덧 ‘산천수’의 자랑이자 귀농인의 친목을 다질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으로 자리 잡았다.
멘토링의 핵심은 교육
산천수와 거창군귀농인연합회가 설립된 목적은 간단하다. 먼저 귀농한 선배로서 후배 귀농인에게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 따라서 정갑수 계장은 농업기술센터에 찾아오는 예비 귀농인에게 14개로 나뉜 작목별연구회 회장부터 연결해준다.
귀농이라는 것은 지식뿐만 아니라 경험을 통해 정착 가능한 직업이다. 하다못해 병충해마다 다른 증상을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랴. 예비 귀농인이 선택한 작목에 따라 현장을 소개하고 직접 겪어보게 하는 것이 이들의 교육방침이다.
기존 귀농인은 자신이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농사를 배웠다. 그러다 보니 정착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실패할 확률도 높았던 게 사실이다. 연합회원들이 한마음을 모은 데는 귀농실패를 줄이고 정착기간을 최소화하여 더불어 행복한 거창군을 만들기 위해서다. 1:1 멘토링은 세심한 교육에 효과적이며 꼼꼼한 질의응답이 가능하니 더없이 훌륭한 제도라는 게 거창군귀농인연합회의 신념이자 지론이다. 무료체험농장을 운영하는 것 또한 이러한 가치가 반영된 행보일 것이다.
멘토-멘티 제도는 귀농인 간의 친목 도모에도 상당한 도움을 준다. 분과별 회의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소집되는 ‘막걸리 번개팅’은 20~30명씩 참여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름 대신 닉네임으로 부르는 특징도 서로의 벽을 허무는 데 도움이 된다. 거창군수님도 어김없이 닉네임으로 카페 활동을 하고 있다니 참으로 철저한 그들이기도 하다. 참고로 닉네임은 알지만 이름을 모를 때는 난처한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희끗희끗하게 수염 난 아저씨들이 공공장소에서 서로를 닉네임으로 호칭할 때면 이상한 시선을 받기도 한다니 웃지 못 할 에피소드다.
전국적으로 귀농이 트렌드가 되고 있는 가운데 거창군은 그 트렌드를 주도하는 역할을 자처한다. 2011년에 설립된 거창군귀농인연합회는 아직 초창기 단계지만 거창군의 입장과 발맞춰 귀농 장려 선봉에 서 있다. ‘군’이라는 지역적 범위가 설정되어 있어 모이기도 쉽고, 온라인 카페의 활성화로 수시로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으니 이보다 유리한 조건은 없어 보인다. 예비 귀농인의 정착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선배 귀농인들. 영리적 목적이 아닌 끈끈한 정으로 뭉친 이들의 영향력은 점점 거세질 전망이다.
미니인터뷰 | 거창군귀농인연합회 회장 박병오
귀농은 준비와 교육만 따른다면 충분히 메리트가 있는 분야라고 예측한다.
Q. 거창군귀농인연합회가 제공하는 귀농 노하우는?
귀농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교육이 중요하다. 귀농 교육의 핵심은 머리에 입력하는 지식보다 직접적인 체험으로 손끝에 농사감각을 익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거창군귀농인연합회는‘무료체험농장’을 개설했다. 작목 선택 방법부터 병충해 예방법 등 다양한 정보를 통해 실질적 경험을 쌓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Q. 연합회에서 운영 중인 작목별연구회의 구성은?
총 14개로 이루어진 연구회는 거창군에서 생산되는 작목 연구 외에도 귀농인 커뮤니티 역할을 도맡고 있다. 작목별 소개부터 하자면 ‘딸기, 사과, 오미자, 특용작물, 한우, 콩고추, 약초동우회’ 가 존재한다. 또한 거창에 터를 잡은 예술가들을 위한 ‘예술인’, 면 단위 커뮤니티인 ‘가조면회’, 귀농인 남편을 둔 아내들의 모임인 ‘여당당’, 거창군의 크고 작은 소식을 전달하는 ‘기자단’, 연합회의 메인 활동인 인터넷 카페 ‘산천수’를 위한 모임, 그밖에 꾸러미 사업을 담당하는 ‘꾸러미’와 ‘전역군인회’가 있다. 각 작목별연구회의 문은 활짝 열려 있으니 언제든 노크하시기를 권한다.
Q. 연합회장이 전망하는 귀농의 비전은?
여주에 있는 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에서 도시민창농과정을 수료할 때 가슴에 새겨둔 이야기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직업비율을 따져볼 때 농민의 수는 현저히 낮다. 그러나 앞으로는 5%로 더 낮아진다고 한다. 이는 행정부에 소속된 공무원과 비슷한 비율이다. 그만큼 시간이 흐를수록 귀한 직업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귀농은 준비와 교육만 따른다면 충분히 메리트가 있는 분야라고 예측한다.
미니인터뷰 | 거창군귀농인연합회 회원 신수범
대자연이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 눈에 보이는 대로만 작업해도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Q. 거창군귀농인연합회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거창군에는 분야별 현직 예술가의 귀농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깨끗한 자연환경 덕분에 영화감독, 도예가, 서예가는 물론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도 환영받는 곳이고 나도 그들 중 한 명이다. 거창에 내려와 약초 농사를 지으며 여러 귀농인을 알게 되 었고, 그 인연으로 인터넷 카페인 산천수와 연합회에 몸담게 되었다.
Q. 창작활동을 하기에 거창은 어떤 환경인가?
도시에서 글을 쓰며 목공방을 운영했다. 2000년 3월, 거창에 생태마을을 만드는 사업이 시작돼 한옥을 건설하는 책임자로 오게 됐다. 아쉽게도 사업은 무산됐지만 거창이 너무 좋아 머물기로 결정했다. 내가 느끼는 거창의 매력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다. 대자연이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 눈에 보이는 대로만 작업해도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도시에서는 창작을 머리로만 대했기 때문에 관념적인 슬럼프에 빠졌었다. 거창으로 귀농한 후 다시 글을 쓸 힘을 얻었으니 이보다 좋은 환경은 없다고 생각한다.
Q. 거창 예술인과의 교류는 활발한가?
귀농한 예술인끼리 모여 작업실을 공개하기도 하고 각자의 창작물을 전시하기도 한다. 도시에 있었다면 같은 장르를 작업하는 사람들끼리 교류하게 된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예술인’이라는 작목별연구회를 통해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