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수입車, 바가지도 대형

국내 수입차 시장점유율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독일 고급차 3사(社)가 한국에서 배짱 장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BMW·벤츠·아우디 3사는 '수입차 값이 비싸다'는 논란이 일 때마다 "한국의 세율이 높고, 시장 규모가 작아 재고 부담이 크기 때문"이라고 항변해 왔다. 특히 최고급 세단은 미국 대비 2배 가까이 비싸다는 소비자들 지적에 "한국엔 최첨단 고급 기능이 옵션으로 대거 탑재된 차가 판매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주장은 사실일까. 본지는 나라별로 다른 세금제도와 경쟁 상황, 옵션 차이 등을 피하기 위해 한 브랜드 내에서 2000㏄급 중형차를 기준으로 선정하고, 상위 대형차의 가격이 몇 배인지 국가별로 비교해 봤다.

공정한 가격 책정이라면 중형차와 대형차의 가격 차 배수(倍數)는 어느 나라에서건 비슷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시장에서는 중형차와 대형 세단의 가격 차가 유독 컸다. 수입차 업체들이 한국에서 큰 차를 다른 나라에서보다 '특별히' 비싸게 팔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중형차 대비 대형차 가격비(比), 한국이 가장 높아

BMW는 한국에서 3시리즈(320i) 대비 7시리즈(740i)를 2.9배 비싸게 팔고 있다. 미국, 독일에선 각각 2.3배, 2.2배 가격으로 판매한다. 한국에서 대형 세단 7시리즈의 가격이 비싸게 매겨져 있는 셈이다.

아우디는 BMW보다 더했다. 아우디 2000㏄급 중형차인 A3(2.0 TFSI) 대비 A8(3.0 TFSI 콰트로 LWB) 가격은 미국에서 2.5배, 독일에선 2.9배 수준이다. 그런데 국내에선 3.5배로 치솟는다. A3는 국내에서 4250만원, A8은 1억469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옵션 없는 기본가격 기준이다. 달러·유로화로 표시된 미국·독일 현지 가격을 한화로 환산하면 차 값 자체도 한국이 5000만~6000만원이나 비싸다.

벤츠는 C클래스(C250) 대비 S클래스(S350 블루텍) 가격이 한국은 2.2배지만, 산지(産地) 독일에선 1.9배로 한국이 역시 더 비쌌다. 다만 미국은 유독 S클래스 가격이 높게 책정돼 2.6배로 한국보다 높았다.

◇한국, BMW 7시리즈 판매량 세계 4위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과 개별소비세 조정 등 가격 인하 요인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입차 업체들이 고급 세단 가격만큼은 크게 흔들지 않는 것은, 비싸도 충분히 잘 팔려서다. 지난해 아우디의 한국 판매량은 전 세계 시장 중 17위에 그쳤지만, 대형 세단 A8 판매량은 한국이 세계 5위였다.

벤츠 역시 전체 판매량은 세계 13위지만 S클래스는 5위, BMW도 전체 판매량은 10위지만 7시리즈는 4위였다. BMW코리아 관계자는 "7시리즈 판매량만 놓고 보면 중국, 미국, 독일 다음으로 한국이 큰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이 독일 고급차 업체들의 '알짜 시장'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수입차 업체는 '비쌀수록 더 잘 팔리는' 한국의 과시형 소비 성향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대형 수입차를 사는 국내 소비자만 '봉' 취급을 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이 점을 주시, 지난달 수입차 업체 현장조사에 들어갔다. 도입 가격에 세금을 붙인 뒤 수입사에서 딜러점으로 넘어가는 유통 과정마다 과도한 마진을 붙이고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

수입차 업체들의 고가 전략은 현대·기아차에도 나쁜 학습효과를 남겼다. 기아차가 지난해 최고급 세단 K9을 출시하면서 주력 모델 가격대를 6000만원대로 잡은 것도, 이 정도 가격에 동급 수입차가 잘 팔리기 때문이었다.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배짱 고가(高價)전략도 위협을 받을 전망이다. 수입차가 국내 승용차 시장 점유율 10%를 돌파한 지난해를 기점으로, 3000㏄ 이상 큰 차 판매량은 줄어들고 있다.

2011년 3000㏄ 이상 수입차는 총 2만6000여대, 작년엔 2만2000여대가 팔려 15% 줄었다. 한국수입차협회 관계자는 "기존에 대형 수입차를 샀던 소비자들은 한국 수입차 팽창기를 이끈 사람들로, 비싼 줄 알면서도 남들과 달라 보이고 싶어서 산 경우가 많았다"며 "이들이 새 차를 사야 하는 시점에 비싼 돈을 주고 그 차를 또 살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