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 디자인과 구부러진 숟가락

  • 전영선((주)시니어파트너즈 이사)

입력 : 2013.03.27 09:37

INDUSTRY

고령화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시니어 용품 산업의 전망이 밝다. 이미 몇몇 대기업은 시니어 용품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시니어 용품 산업의 본격적인 질적·양적 성장이 예견된다. 더불어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들어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에 대한 기사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문자 그대로 남녀노소,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말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출발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기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됐던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바로 베트남전쟁과 북유럽의 급격한 인구 고령화다. 베트남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미국 장병들은 고국으로 속속 귀환했고, 북유럽의 노인들은 스스로 독립적인 생활을 꾸려가기 시작했다. 장애인과 고령자, 이들이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을 없애기 위해 제품과 주거공간을 디자인하기 시작한 것이 유니버설 디자인의 시초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단어 자체는 1980년에 미국의 한 건축가가 처음 언급했다. 유럽 등지에서는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 또는 ‘포괄적 디자인(inclusive design)’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표현은 다양하지만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사용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만큼은 동일하다. 그리고 유니버설 디자인의 적용 분야는 갈수록 확장되고 있다. 단순히 제품 디자인 차원을 넘어 건축과 서비스, 정보통신기술 분야까지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고령자를 위한 디자인!

유니버설 디자인 트렌드는 미국과 유럽, 일본 시장을 거쳐 이제 한국에서도 확인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인구 구조상 고령자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아울러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장애인에 대한 배려 문화도 성숙돼가는 추세다. 이는 향후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각종 산업의 전망이 밝은 이유다.

하지만 현재 유니버설 디자인이 제품에 적용되고 있는 사례를 보면 자칫 산업화 초기 단계에 시행착오를 겪지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비정상적으로 구부러진 숟가락 같은 제품을 고령자를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의 대표적인 제품으로 소개하는 경우다. 물론 이러한 제품들은 장애인과 고령자의 불편함을 덜어주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디자인이긴 하다. 하지만 모든 이들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관점에서 유니버설 디자인 제품으로 소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전통적인 유니버설 디자인의 4대 원칙은 지원성, 접근성, 수용성, 안정성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공평한 사용, 융통성, 간단하고 직관적인, 오류에 대한 포용력, 적은 물리적 노력 등 그 원칙과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최근의 이러한 추세를 염두에 둔다면, 90도로 구부러진 숟가락은 적어도 공평한 사용이라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원칙에서 어긋난다. 국내에서 고령자를 배려한 디자인이라고 내놓은 제품이 실제로는 타깃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고령자조차 고개를 돌리는 제품도 있다. 고령친화 기능성에 매몰돼 제품 본연의 보편성을 잃어버렸거나, 직관적이지 않은 디자인으로 사용자를 당혹스럽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령자는 물론 아이들과 여성도 사용하기 편리하고 마음에 드는 제품,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그 사용법이 한눈에 들어오는 제품,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유니버설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세계적 인터넷 기업 구글은 스마트 안경 ‘구글 글라스(Google Glass)’를 출시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구글 글라스는 안경을 통해 내가 현재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증강현실 기술이 접목되고 별다른 버튼도 필요 없이 음성으로 작동되는 컴퓨터다. 그 누구도 이 제품이 고령자를 배려한 제품이라고 말하지 않지만, 종전에 출시된 어떠한 제품보다 시니어에게 접근성이 높고 직관적인 정보통신기술(ICT) 제품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유니버설 디자인 제품이다. 시니어에게 필요한 것은 구부러진 숟가락만이 아니다.


모두를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 제품들

유니버설 디자인을 대표하는 브랜드를 꼽으라면 글로벌 주방기구 브랜드 옥소(OXO)를 들 수 있다. 옥소는 미국 시장 점유율 50%를 차지하며, 미국 주방용품 1위 기업으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1990년에 설립된 옥소는 10년 만에 전 세계 50개국에 진출해 이제는 전 세계 주방용품 시장을 이끌고 있다. 노약자나 장애인도 어렵지 않게 다룰 수 있게 설계된 디자인이 빠른 성장 요인이다.

옥소는 유니버설 디자인 철학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왜 주방기구는 사용하기 어려울까? 왜 주방기구를 사용하다가 다치는 일이 발생할까?’ 설립자 샘 파버는 손에 관절염이 있어 주방기구 사용에 애를 먹는 그의 아내를 생각하며 새로운 개념의 주방기구를 고안했다.


손에 물 묻힐 필요 없는 야채 탈수기

옥소 야채 탈수기[OXO Salad Spinner]

물에 씻은 야채를 힘들이지 않고 탈수할 수 있는 주방기구. 한 손으로도 쉽게 작동되며, 야채볼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미끄럼 방지 링이 달려 있다. 작동법은 매우 간단하다. 손잡이를 간단히 누르면 탈수기가 돌아가면서 야채에 머금은 물기가 빠지며, 뚜껑에 달려 있는 브레이크로 탈수기를 멈춘 후 야채를 꺼내면 된다.


허리를 숙일 필요 없는 계량컵

옥소 굿 그립 계량컵 [OXO 2Cup Angled Measuring Cup]

허리를 숙일 필요가 없는 계량컵. 비스듬한 표면에 계량숫자가 표시돼 있어 선 채로 위에서 봐도 계량이 가능하다. 부드럽고 미끄럽지 않은 소재로 손잡이를 제작해 안정감 있는 그립감을 준다.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

도로 폰이지 740[Doro PhoneEasyⓡ 740]

나이가 많은 시니어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 스웨덴 휴대폰 제조기업 도로(Doro)가 만들었다. 크고 직관적인 아이콘으로 인터페이스가 구성돼 있어 스마트폰 사용이 부담스러운 시니어들에게 적합하다. 뉴스 검색, 메시지 교환, 사진 전송, 인터넷 등의 조작이 수월하고 전화나 문자 전송이 편리하도록 별도의 슬라이드 키패드가 장착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디자인 회사 베리데이(Veryday)가 디자인했으며, iF 제품 디자인 어워드 2013(iF Product Design Award 2013)에서 수상했다.


안전하게 목욕을 즐길 수 있는 욕조

테우코 콤비 유닛 383[Teuco Combi Units 383]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목욕을 즐길 수 있는 인체공학적 설계의 월풀 욕조. 욕조 측면에 유리문을 달아 욕조 벽을 넘어가기 부담스러운 노인이나 어린 아이들도 쉽고 안전하게 욕조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욕조 유리문은 강한 충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강화유리를 썼다. 또 욕조 본체 외벽은 오크 우드 패널로 처리해 멋스러움을 더했다. 이탈리아 욕조 전문 기업 테우코(Teuco)의 제품이다.


어른과 아이 모두 앉을 수 있는 의자

6474 페이지 체어 [6474 Pages Chair]

색다른 방법으로 높이 조절이 가능한 의자. 고정된 여러 장의 방석을 원하는 높이에 따라 등받이로 넘겨 의자 높낮이를 조절하면 된다. 방석을 넘기는 형태가 마치 책을 넘기는 것처럼 보여 이름이 페이지(Pages)다. 방석을 넘길 때마다 달라지는 의자 색상은 보너스. 도쿄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일본인 디자이너들이 만든 디자인 유닛 ‘6474’의 아이디어 가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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