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어디로든 훌쩍 떠나고픈 계절. 따사로운 봄 내음이 입안까지 깊숙이 전해지는 곳이라면 좋으리. 꽃과 나무와 바람과 그 속에서 난 먹거리와 먹거리보다 더 맛깔난 한 편의 시가 있는 풍경.
앞대 개포가에선 또 나즉한 뱃고동이 운다
집집마다 부뚜막에선 왱병이 불고 야야, 주꾸미
배가 들었구나, 할머니 쩝쩝 입맛을 다신다
빙초산 맛이 입에 들척지근하고 새콤한 것이
달기가 햇뻐꾸기 소리 같다
아버지 주꾸미 한 뭇을 사 오셨다 어머니 고추장
된장을 버무려 또 부뚜막의 왱병 *을 기울이신다
주꾸미 대가리를 씹을 때마다 톡톡 알이 터지면서
아삭아삭 씹히는 맛, 아버지 하신 말씀
니 할매는 이 맛을 두고 어찌 갔을 거나
* 왱병 : 식초병
- 송수권 ‘봄날’ 中
충남 서천 | 주꾸미
주꾸미는 산란을 앞두고 알이 단단히 영그는 지금이 제철이다. 주꾸미 일번지로 통하는 서천 홍원항으로 가자.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주꾸미를 재료로 볶음, 회, 무침, 샤브샤브 등을 즐길 수 있다. 특히 고추장과 간장 등으로 매콤하게 맛을 낸 주꾸미볶음은 봄철 입맛을 돋우기에 안성맞춤. 서천 주꾸미는 유독 식감이 부드럽고 쫄깃하기로 유명한데, 비결은 다름 아닌 ‘소라방’. 서천에서는 소라 껍데기를 줄에 묶어, 마치 낚시하듯 주꾸미를 산 채로 잡아 올리는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주꾸미는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한 스태미나 식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자양강장제 성분인 타우린이 무려 오징어의 5배 이상 함유돼 있다고 하니 원기 회복에도 으뜸.
Tip 동백꽃·주꾸미축제
홍원항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 이동하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마량포구 동백나무숲이 나온다. 이즈음 동백숲의 춘백은 하나둘 선홍빛 망울을 터뜨려 입뿐 아니라 눈까지 호사를 누리게 한다. 주꾸미도 맛보고 꽃구경도 할 수 있는 동백꽃·주꾸미축제를 놓치지 말자. 올해 14회를 맞는 동백꽃·주꾸미축제는 주꾸미 낚시, 주꾸미 요리장터 등 다채로운 체험프로그램으로 가득하다. 3월 30일부터 4월 12일까지.
(…) 어머니는
알 밴 꽃게 한 마리 사 오셨다
수건을 머리에 두르시고 마당에 솥단지 걸어놓고
간장을 뭉근한 불에 오래 끓이셨다
식힌 간장에 참게 넣고 삭혀 간장게장을 만드셨다
그 어린 시절
암게의 앞가슴 풀어헤치면
노란 꽃송이 따고 싶었다
아버지가 다 드신 빈 게딱지에
밥을 꾹꾹 비벼 먹었다
햇살 먹은 장독대 항아리 안에서
참게 한 마리 꺼내시는
어머니의 주름진 손,
- 장성호 ‘손맛’ 中
충남 태안 | 꽃게
봄은 바야흐로 꽃게의 계절이기도 하다. 산란을 앞두고 알이 통통히 오른 게맛을 보지 않고 어찌 봄을 났다 할 수 있을까. 태안 안흥항(신진도항)으로 가면 무침, 탕, 찜 등 다양한 꽃게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안흥항은 서해안의 대표적 인 수산물 집산지다. 하지만 알아둘 것! 작은 항구인 채석포항에서 잡아 올린 꽃게가 현지인들에겐 더 인기라는 사실. 맛에서 한 수 위라는 후문이다. 속이 꽉 찬 봄꽃게로 만든 요리라면 어떤 것이라도 구미를 당길 테지만, 그래도 태안의 명물은 뭐니 뭐니 해도 간장게장이다. 밥도둑 중의 밥도둑. 항구를 한 바퀴 돈 다음이라면 게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을 찾아나서는 게 현명하다. 안흥항 부근의 ‘화해당’이 유명하다. 군청 소재지인 태안 읍내로 가도 이름난 게장 전문 식당 몇 곳을 만날 수 있다.
Tip 태안튜울립꽃축제
사계절 꽃축제도 좋은 구경거리다. 태안에서는 봄 튤립, 여름 백합, 가을 달리아 등 매 계절 꽃을 주제로 한 축제가 열린다. 태안 꽃축제를 찾는 관람객은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지난해 봄에는 자그마치 3만 명이 이곳을 찾았다. 올봄 튜울립꽃축제는 4월 25일부터 5월 9일까지 태안군 남면 신온리에서 열린다. 이번 축제의 부제는 ‘수줍은 사랑의 고백’. 튤립과 유채, 메리골드, 페튜니아 등 각종 아름다운 꽃이 만발한 풍경 속에서 간만에 로맨틱한 남편이 되어 보는 건 어떨는지?
바다를 떠다 된장을 풀고
바늘에 봄을 달아 낚은 도다리를 넣는다
쑥을 뜯어다 헹궈 넣고
봄도다리쑥국 한 그릇이면 되겠다
뻘에 숨어서 기며 세상을 한쪽으로만 흘겨보다가
눈이 한켠에 몰린 것들
덤불쑥마냥 마음이 뻐세어
이 사람 저 사람 치대는 것들이라면
봄도다리쑥국 한 숟갈만 떠먹어봐도 알겠다
남녘 바다에서 깨어난 봄이
저 어족과 어떻게 눈을 맞춰 봄바다에 춤추게 하는지를
해쑥 한 잎이라도 다칠세라 국을 끓여내
거칠고 메마른 몸들 대접하는 그의 레시피를
- 윤성학 ‘봄도다리쑥국’ 中
경남 사천 | 도다리
봄의 진미를 논할 때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어족이 바로 도다리. 경남 해안지방, 그중에서도 사천의 도다리 맛은 단연 최고로 꼽힌다. 삼천포 앞바다의 거센 물살로 인해 육질이 단단한 것이 특징. 이맘때 삼천포항 일대 어시장에는 온통 도다리 일색인데, 좌판에서 싱싱한 횟감을 구입해 인근 식당에서 요리값을 치르고 먹는 편이 가장 편리하다. 회로 갓 떠낸 도다리의 쫄깃한 살점을 새콤한 초장에 찍어 먹는 맛이란…. 구수한 된장에 물이 오른 도다리를 쑥과 함께 끓여낸 도다리쑥국 역시 봄이 가기 전에 반드시 맛봐야 할 필수요리다. 알싸한 햇쑥 내음이 배어든 생선의 보드라운 살점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그야말로 맛의 또 다른 경지가 바로 여기에 있나니.
Tip 와룡문화제
사천에서는 매년 봄 와룡문화제가 열린다. 문화제가 열리는 선진리성까지는 삼천포항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최초로 거북선을 띄워 왜적을 무찌른 곳으로 잘 알려진 신진리성은 사천만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 특히 국내 최대 규모의 벚꽃단지이기도 한 이곳은 축제 기간 내내 상춘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축제는 4월 11일부터 14일까지 나흘간 열린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삼천포항과 남해군 창선면을 연결하는 창선·삼천포대교를 빠뜨리지 말 것. 한려수도의 빼어난 경관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미나리 파릇하게 데쳐
계란지단으로 띠를 두르고
나란히 접시에 오른 다음
초고추장으로 연지 찍어먹던
미나리강회
그날, 그대가
내 국그릇 앞으로
밀어 주었지요
(…)
오, 오늘 저녁
문득 생각나네요
미나리강회
푸릇한 그대의 이마.
- 정두리 ‘미나리강회’ 中
경북 청도 | 미나리
쌉싸름한 향과 아삭아삭 씹히는 질감이 살아 있는 봄미나리.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 섬유질이 풍부한 웰빙식품이다. 해독 및 혈액 정화에 특효. 특별한 양념 없이 날것으로 혹은 데쳐서 먹으면 봄미나리의 맛을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미나리,하면 떠오르는 곳은 청도 한재. 청도읍 초현리, 음지리, 평양지 일대를 한재라고 한다. 이 일대는 마을 전체가 미나리밭이나 다름없다. 밭에서 금방 채취한 싱싱한 미나리를 그 자리에서 쌈 삼아 고기와 곁들여 먹는 맛이 쏠쏠하다. 화악산 중턱에서 나는 암반지하수로 재배해 특유의 향이 강하고 당도가 높은 한재 미나리. 미나리를 이용한 요리 중에서는 미나리강회가 대표적이다. 옛 궁중음식의 일종인 미나리강회는 끓는 물에 데친 미나리 줄기로 한데 포갠 편육, 달걀지단, 고추, 버섯 등의 재료를 감아 싼 것. 봄 막걸리 안주로 제격이다.
Tip 청도소싸움축제
매년 이맘때 청도군 화양읍 청도소싸움경기장에서는 축제가 한창이다. 소싸움은 청도의 대표적인 민속행사이자 정부가 인정한 문화관광축제. 90여 마리 싸움소의 현란한 경기를 관전하는 것도 이 봄의 색다른 묘미가 될 터. 옛 향수를 불러일으킬 소싸움축제는 4월 17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된다.
몸집이 퉁퉁하고 후덕하게 생긴 아줌마가
솜씨 있게 끓여내는 멸치 된장찌개와 쌈
그것이 단연 으뜸가는 처방이라고
때로는 외지 친구들에게 자랑스레 소개도 하지만,
입맛을 돋우며 보글보글 끓을 때
된장냄새 풍기며 우리들의 인정도 함께 끓나니.
보라, 뜨거운 뚝배기 속에 와글거리며
죽은 멸치가 다시 살아나 펄떡거리는
저 싱싱한 멸치떼를. 멸치떼의 환호를.
푸른 상추나 다시마로 싸서 먹을 때마다
푸들거리는 심해의 맥박은 출렁거리며
몸 구석구석 쌓인 피로를 깨끗이 지워버린다.
- 이상개 ‘멸치쌈밥집’ 中
부산 기장 | 멸치
19세기〈자산어보〉에서는 물에서 나오자마자 금세 죽어버리는 성질 급한 멸치를 ‘멸할 멸(滅)’자를 써 ‘멸어(滅魚)’라 지칭하기도 했다. 그러니 봄에 한껏 물이 오른 멸치를 싱싱한 회로 즐기려면 직접 산지로 향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이즈음 부산 대변항은 육질이 연한 ‘기장멸치’를 찾아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이들로 활기를 띤다. 대변항은 기장읍에 위치한 작은 어촌이지만 동해안 일대에서 가장 큰 멸치어장을 거느린 곳. 이 일대 바다의 풍부한 플랑크톤 덕분에 멸치나 미역의 풍미가 남다르다. 뼈와 내장을 발라낸 기장멸치에 미나리, 쑥갓, 깻잎 등의 갖은 재료를 넣어 발갛게 버무려낸 멸치회는 매콤새콤한 맛이 일품. 멸치회만큼 유명한 것은 젓갈. 멸치 액젓으로 김치를 담그면 그 또한 남해의 정취가 깃든 별미가 된다.
Tip 기장멸치축제
멸치 성어기인 봄이면 대변항 일원에서 기장멸치축제가 열린다. 먹거리 무료 체험을 비롯해 풍어제, 마당극 등의 다채로운 볼거리가 펼쳐진다. 올해 축제는 봄볕이 한창 무르익은 5월 2일부터 5일까지 나흘간 이어진다. 자세한 프로그램은 아직 미정. 대변항 인근 오랑대도 기장의 자랑거리 중 하나. 드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기암절벽과 그 주변의 흐드러진 유채꽃에서 따뜻한 남쪽 지방의 흥취를 만끽할 수 있다. 사진을 찍는 이들에게 이곳은 일출을 촬영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기도 하다.
사진 협조 사천시청, 서천군청,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