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3.27 09:37

GALLERY

조선시대 선비는 청렴과 청빈을 우선 가치로 삼아 일상생활에서 검약과 절제의 미덕을 실천했다. 할 말은 하는 서릿발 같은 기개, 일관된 지조 그리고 삶을 즐기는 풍류와 해학을 지닌 선비는 시류에 영합하는 것을 비루하게 여겼다. 정신보다는 외양을,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조선의 선비는 문득 그리워지는 대상이다.


병산서원 들문

병산서원 서재 경의재(敬義齋)에서 들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 배롱나무가 한눈에 들어온다. 들문이 액자가 되어 시야에 들어서는 배롱나무가 또 다른 풍광을 그려내며 세상의 이치를 가르쳐주는 듯하다.


도산서원 대문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이 노년에 관직을 내려놓고 낙향해 후학을 양성하며 기거하던 곳이다. 유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농운정사, 서원의 출판사로 각종 목판본과 책을 보관했던 장판각과 광명실, 퇴계 선생의 위패를 모신 상덕사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학문에 정진하며 조선 선비의 정신을 갈고 닦고자 했던 유생들과 여러 가지 소임을 가지고 이곳을 지켜가던 이들 모두가 매일같이 드나들었을 대문.


봄의 찻상

작약꽃 한 송이를 상 위에 올려 봄날의 정취를 담아낸 찻상. 조선의 선비들에게 차는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보양해 주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우정의 표시로 차를 선물했고, 시를 지을 때나 술을 마신 뒤에도 마음을 다스리고자 차를 마셨다.


묵계서원에 핀 홍매화

1687년(숙종 13년)에 창건된 묵계서원은 조선 초기 성종 때 대사성(大司成)을 역임한 김계행과 세종때 사헌부 장령(掌令)을 지낸 옥고를 봉향하는 곳이다. 1869년(고종 6년)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후에 강당과 문루인 읍청루와 진덕문, 동재(東齋) 건물 등을 복원했다. 서원 옆에는 보백당 김계행의 종가가 있다.


후조당

조선 선조 때의 문신 김부필(1516~1577)이 지었다고 전하는 광산 김씨 예안파 종택에 딸린 별청 건물. ‘후조당’이라는 현판은 스승인 퇴계 이황의 글씨다. 원래는 안동시 예안면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4년 동쪽으로 2㎞ 떨어진 안동시 와룡면으로 이건했다.


사진가 이동춘은 1987년부터 10년간 출판사 디자인하우스 사진기자로 여행, 리빙, 푸드 등 다양한 분야의 사진을 찍으며 자신만의 사진 세계를 구축했다. 이후 한국의 전통문화와 관련된 종가 사진을 촬영하며 선현들의 의(義)와 정신을 오늘의 시선으로 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독일 베를린 한국문화원에서 ‘종가, 선비정신과 예를 간직한 집’이라는 주제의 사진전을 열었고, 지난 2월에는 헝가리 한국문화원에서 그리고 4월에는 불가리아에서 전시가 이어질 예정이다.

조선일보 조선닷컴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