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죽었다고? 제대로나 쓰고 우는소리 해라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53) 명지대 교수를 만나고 싶었던 이유는 단지 그가 당대의 1급 평론가이자 관능적 미문(美文)의 소유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두절미하면 '우는소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시 비평집 '나사로의 시학'(문학동네)과 소설 비평집 '폐허에서 꿈꾸다'(〃)를 한꺼번에 펴냈다. 평론집을 낸 건 12년 만이다. 문인들이 먼저 문학의 위기와 종언(終焉)을 걱정하는 시대에, 그는 이 시대의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명쾌하고 기품 있는 문장으로 설득한다. 평창동 그의 집 서재 창(窓)으로 북한산 형제봉이 우람했다.

―책에 '우는소리'가 없어 좋았다.

"문학이 힘든 건 피차 알고 있다. 그런데 자꾸 이야기하면 푸념이 되거나, 자해 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문인은 은유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은유와 직설을 구분하지 않을 때,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오도한다. 위기론과 종언론은 조심해야 한다."

이번 책에서 그는 헤테로토피아적 상상력을 제안한다. 작가 보르헤스(Borges)가 창안했고, 학자 푸코(Foucault)가 논리화한 개념이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요약하자면 이 세상은 단일한 세계가 하나 있고 그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해석이 있는 게 아니라, 원래 다양한 세계가 있고 다양한 해석이 병렬·교차하고 있다는 것. 대선을 전후해서 선악의 이분법과 이데올로기로 나뉘었던 한국 문단에 시사점이 커 보였다.

―선거를 앞두고 문학에서도 이분법적 상상력이 지배한 것 같다.

"정치적인 상상력을 내세우는 사람일수록 단순한 선악 대비가 습관화되어 있다. 그렇게 판단하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이런 이분법적 문학이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 편향됐고, 시대에 뒤떨어진 시각이라 본다."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 젊은 작가 137인의 정권 교체 시국 성명과 한국 작가회의의 지지 성명 등이 있었다.

"조심스러운 주제다. 한두 명도 아니고 137명…. 요즘 시인이나 작가들의 책 서문을 보면 앞뒤 맥락 없이 노동과 혁명을 이야기한다. 그런 단어들이 튀어나올 때마다 뜬금없다는 생각을 한다. 최근 10년 동안 되풀이되는 문제도 그렇다. 사실 민주·반민주 구도는 끝났는데, 선거가 닥치거나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부딪치는 국면이 되면 반드시 되살아난다. 이 구도로 가는 순간 다른 모든 게 휘발되고, 경직된 선악 이원론으로 모든 걸 판별한다. 이렇게 되면 뭔가 굉장히 어색해지고 현실과 안 맞는 이야기를 반복하게 된다."

그는 미 스탠퍼드대 영문과 교수인 비평가 프랑코 모레티(Moretti)의 드라큘라 분석을 인용했다. 소설 드라큘라의 작가 브람 스토커(Stoker)는 19세기 작가. 당시 유럽은 이미 독점자본주의 단계로 전환했지만, 작가가 드라큘라에게 시커먼 망토와 중세 구식 귀족 이미지를 입힌 점에 모레티는 주목했다. 그 시대에도 중세 귀족계급을 여전히 두려워하는 대중의 무의식과 공포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민주·반민주 구도를 고집하는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그는 '정치적 제스처'라는 표현을 썼다.

―정치적 제스처?

"민주·반민주를 외치는 문인들도 시대 흐름에 뒤떨어져 있다는 것을 개인적으로는(속으로는) 인정한다. 정치적 제스처지. 실제 작품, 사생활, 정치적 제스처가 괴리(乖離)를 보인다. 결국 우리 사회의 지체이고, 그 반영으로서 문학의 지체다. 이런 도식을 부수는 상상력이 나와야 한다. 이원론을 넘어서는 복합적인 울림을 주는 관점 말이다. 실제로 A급 작가들은 이미 쓰고 있다. 그들이 여당을 찍었든, 야당을 찍었든, 투표를 하지 않았든, 단순 논리를 벗어난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김영하, 김연수, 박민규, 김애란 등이 그들이다."

대화의 주제는 세계문학으로도 확장됐다.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예외적 문학평론가로 꼽힌다. 부박한 엔터테인먼트 문화상품이 아니라 헤테로토피아적 상상력을 성취하고 실현한 사례라는 것이다. 그는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이었던 조지 오웰의 장편 '1984'와 대책 없는 낙관주의였던 1984년의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굿모닝 미스터오웰'을 양극단에 놓고, 가능성과 제약이 공존했던 하루키의 '1Q84'를 대안의 상상력으로 제시했다. 그는 하루키의 대표작을 '세계의 끝,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태엽 감는 새'로 꼽으면서, "하루키의 개인적인 애독자로서, 새 작품이 기존의 최고를 어떻게 경신하는지 기대 중"이라고 했다.

―당당한 건 좋지만, 문학의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이 축소된 건 현실이다. 다시, 문학은 뭘 할 수 있나.

"문학은 사회를 바라보는 인간 시각을 변화시키는 거다. 이 관점에서 문학을 능가하는 예술이 있나. 그런 점에서 문학이 가진 힘은 쇠퇴하지 않았다. 쿤데라와 마르케스를 보라. 소름 끼치게 하는 순발력과 다른 사람이 의식하지 못하는 지점을 태연하게 선취(先取)해내는. 쿤데라와 마르케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 예술이라면 존재할 가치가 없는 게 아닌가."

그는 젊은 후배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영미권과 스페인어권, 중국어권에서 무서운 젊은 작가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작가 쑤퉁(蘇童)의 '나, 제왕의 생애'를 예로 들면서, "한국문학 죽었네 마네, 이러기 전에 이런 작품이나 쓰고 나서 사망신고 하라고 그래라"며 특유의 시니컬한 표정을 지었다. 인터뷰는 문학적 초조감에 사로잡혀, 문학적 허영만 남아 정치적 무리수를 두고 있는 몇몇 작가의 실명 비판으로 이어졌다. 비보도가 전제였다. 하지만 "이 말은 써도 좋다"며 "정치적 발언 때문에 작가 이문열을 욕들 하는데, 욕하는 작가 중에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를 넘어선 작품 쓴 작가가 누가 있느냐"고 담담하게 말했다. 정치 발언하기 전에, 문학의 종언 푸념하기 전에, 제대로 된 작품이나 먼저 쓰라는 냉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