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몰리던 글로벌 자금… 선진국으로

지난해 신흥국으로 집중됐던 글로벌 투자 자금이 선진국으로 서서히 방향을 틀고 있다. 이 덕분에 미국을 중심으로 선진국 증시가 상승세를 타고 있고 선진국 투자 펀드도 선전 중이다.

반면 신흥국 경기에 대한 눈높이는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 동남아시아 각국 증시는 이미 많이 올랐다는 평가가 있고, 중국은 부동산 규제 우려가 나오면서 증시도 주춤하고 있다.

◇미국 펀드, 일본 펀드 기지개

글로벌 자금 흐름이 바뀌면서 해외 증시에 투자하는 펀드 성적표도 엇갈리고 있다.

펀드 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최근 1개월 동안 해외 주식형 펀드는 평균 -1.4% 수익률을 기록했다. 해외 주식형 펀드가 지난 6개월 동안 평균 6.3%의 플러스 수익을 낸 것과 비교하면 부진한 모습이다.

특히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 증시에 투자하는 펀드의 성적이 뒷걸음쳤다. 최근 6개월간 평균 10%대 수익을 올리던 중국 펀드는 한 달 동안 평균 1.9%의 손실을 냈다.

다른 신흥국 펀드도 상황은 비슷하다. 최근 한 달만 보면 인도 펀드는 평균 2%의 손실을 냈고, 브라질 펀드와 러시아 펀드는 각각 -1.8, -3.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동남아 펀드는 1개월 성적은 아직 플러스지만 최근 1주일 동안 1%대 손실을 냈다.

반면 미국 펀드에는 봄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 펀드의 최근 1개월 평균 수익률은 2.4%. 3개월 수익률은 8.1%로 같은 기간 해외 주식형(0.9%) 펀드의 성적을 크게 웃돈다.

유럽 펀드는 키프로스 구제금융 우려로 주춤했지만 그래도 괜찮은 성적을 냈다. 유럽 펀드의 1개월 평균 수익률은 1.7%로 집계됐다.

애물단지 취급받던 일본 펀드는 엔화 약세에 힘입어 증시가 오르면서 수익률이 껑충 뛰었다. 일본 펀드는 지난 한 달 동안 5.6%, 6개월 동안에는 28.6%의 수익을 거뒀다.

◇미국 살아나니 뭉칫돈 대이동

선진국 증시의 상승세 뒤에는 달라진 글로벌 자금 흐름이 있다.

펀드 조사 기관인 이머징포트폴리오닷컴에 따르면 신흥국 주식에 종합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들로 구성된 '글로벌 신흥시장(GEM) 펀드'에는 3월 들어(지난 20일 기준) 16억7500만달러가 순유출됐다. 지난 1월과 2월 각각 160억9700만, 68억달러가 유입된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선진국 중에서는 미국 증시로의 자금 유입이 크게 늘고 있다. 2월에 8억8800만달러가 빠져나갔던 미국 펀드는 이달 들어 186억달러가 넘는 돈이 들어왔다.

인터내셔널 펀드도 꾸준히 자금이 몰리고 있다. 인터내셔널 펀드는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주식을 사는 펀드로 주로 선진국에 투자한다.

◇기댈 곳은 미국뿐?

글로벌 자금이 다시 선진국 문을 두드리는 것은 미국 경제가 확실히 살아나는 징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유럽 재정 위기가 잠잠해지는 등 글로벌 위험 요인이 완화되면서 안전 자산인 채권보다는 위험 자산인 주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이유로 꼽힌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중국 등 신흥국보다 미국을 중심으로 선진국 경기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공감대가 있다"며 "키프로스 구제금융 사태로 안전 자산 선호 현상이 짙어지면서 신흥국보다는 선진국 주식에 더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신흥국에 이미 엄청난 양의 돈이 유입됐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한다.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증시는 작년 말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바 있다.

중국의 경기 둔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신동준 동부증권 투자전략본부장은 "연초에 중국 부동산 시장이 다시 과열 조짐을 보이자 정부가 돈줄 조이기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