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영어공부, 너무 재밌어 밤새우기 일쑤죠"

지난 25일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난 현정화(44)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은 대학생처럼 보였다. 'USC(서던캘리포니아대)'라고 써 있는 후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어깨엔 커다란 책가방을 멨다. 현 감독은 "내가 요즘 이러고 다닌다"며 씩 웃었다.

한국 탁구의 '살아있는 전설' 현 감독은 지난해 가을부터 학생 신분이다. 한국마사회를 휴직하고 자비를 털어 USC 랭귀지스쿨로 영어 연수를 왔다. 오전 7시 30분에 등교해 오후 3시 30분까지 수업을 듣는 빠듯한 일정이다. 함께 온 자녀들을 돌보면서 날마다 과제와 시험 준비도 해야 한다. 그는 "처음 왔을 땐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서 밤을 새운 날이 많았다"며 "수업을 단 한 번도 빼먹은 적이 없다"고 했다.

현 감독은 국제 스포츠 행정에 도전장을 내려고 자비 유학을 단행했다. 영어 발음에 자신이 없어 늘 딸에게 물어보곤 했다는 그는 "여기 와서 문장에 쉼표 찍는 법부터 새로 배웠다"고 했다. 그는 "나는 영어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영어를 공부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라며 "기초부터 시작한다는 게 솔직히 창피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 어린 시절 운동에만 전념했던 현 감독은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웠다고 했다. 운동선수들이 학업과 운동을 병행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돕는 미국 대학의 프로그램을 지켜보면서 그 아쉬움은 더욱 커졌다. 미국 대학 중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가장 많이 배출(금 135·은 87·동 65)한 USC의 경우 현재 21개 종목 650명의 선수가 재학 중이다. 교직원 18명과 보조 교사 80명이 선수들이 졸업할 때까지 치밀하게 관리한다.

현 감독은 "내가 어렸을 때 누가 나를 이런 식으로 이끌어줬다면 나는 훨씬 더 빨리 세계 최고에 올랐을 것"이라고 했다. USC 운동선수들은 노트 필기·시험 준비 요령은 물론 시간 관리법, 효율적인 훈련법까지 배운다. 부족한 과목은 성적이 우수한 학부생에게 1대1 과외를 받을 수 있다. 과제를 빠뜨리거나 시험 점수가 떨어지면 일정 기간 동안 훈련을 금지하거나 대회 출전을 못 하도록 하는 '처벌'이 내려진다. 작년 8월엔 7000만달러(약 780억원)를 쏟아부어 학습·상담·훈련 공간을 한데 모은 최첨단 시설 '존 매케이 센터'를 세웠다.

현 감독은 "운동선수들 중 극소수만이 프로로 데뷔하며, 프로에 가더라도 30~40대가 되면 은퇴한다"면서 "미국 대학에서는 이들에게 '공부를 인생의 보험으로 생각하라'고 가르친다"고 했다.

5월에 감독직에 복귀하는 그는 "돌아가면 '시켜서 하는 탁구' '기계적인 탁구'가 아니라 왜 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하는 탁구'를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