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씁쓸함이 모자라 씁쓸한 '황혼의 동화'

더스틴 호프먼(76)은 흡족한 노년이 아니라 발랄한 청년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와 개인적 친분이 없어 확인할 수 있는 없지만 75세에 첫 연출작으로 내놓은 '콰르텟'을 보면 그런 확신이 든다. 노년을 우아하고도 경쾌하게 그려낸 이 영화는 호프먼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와 많이 닮았다.

'콰르텟'이란 제목에서 짐작하듯, 네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왕년의 유명 오페라 가수였던 레지(톰 커트니)와 윌프(빌리 코놀리), 씨씨(폴린 콜린스)는 은퇴한 음악가들을 위한 실버하우스인 비첨하우스에 산다. 젊은 시절 레지에게 사랑의 상처를 준 소프라노 진(매기 스미스)이 이곳에 오자 이들은 진을 끌어들여 공연에 나가려고 한다. 콰르텟을 이룬 네 명의 주연은 물론 모든 조연배우는 원래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처럼,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다. 일부 배역은 실제 은퇴한 음악가들에게 맡겼으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최고의 배우들이 만들어낸 앙상블과 적재적소에 들어간 음악만으로도 이 영화는 호프먼의 미소처럼 편안하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미소만 짓고 살기가 어디 쉬운가. 청년이든 노년이든 고통이나 위기, 슬픔이 없는 삶은 없다. 이 영화는 그런 부정적인 요소를 슬쩍 뭉개버린다. 비첨하우스가 재정문제로 문을 닫을 것이란 설정에서 시작하지만, 이 문제는 어느 누구의 고민과 노력도 필요없이 해결된다. 젊은 날 실연을 극복 못해서 진을 외면했던 레지는 금방 마음을 바꾼다. 진도 마찬가지다. 반짝이던 재능이 나이가 들면서 녹슬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지만 그 고민 역시 얄팍하게 다뤄진다.

이 영화는 노년에게 바친 초콜릿 같은 영화다. 단, 카카오 함량을 줄이고 우유를 많이 넣은 밀크 초콜릿이다. 달콤하고 부드러워 입 안에서 스르르 녹지만, 그래도 카카오의 씁쓸한 맛이 아쉽긴하다.

2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