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시린 제주의 속살

가을 어느 날 새벽, 밤새 취흥(醉興)을 즐긴 화가 강요배(61)가 바람을 쐬려고 방문을 열어젖혔다. 청아한 제주 하늘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물질 없이 순정(純正)한 하늘 빛. 숙취로 어찔어찔한 중에도 그 빛깔에 반한 그는, 열린 문으로 보이는 그 하늘을 사각형 단순한 구도로 캔버스에 담았다. 제목은 '여명'(2012).

다음달 21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는 강요배 개인전에서 대주제를 이루는 건 제주의 하늘이다. 13년째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에 틀어박혀 제주의 자연을 그리고 있는 화가는 이번 전시에서 제주 하늘을 화폭에 가둬버렸다. 전시작은 회화 40여점과 드로잉 10여점.

강요배는 80년대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였다. 민중미술 그룹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하며 고향 제주의 아픈 역사, 4·3 사건 등을 화폭에 담았다. 요즘은 더 이상 역사화를 그리지 않는다. 매년 4월 3일, 제사 지내듯 한 점 그릴 뿐이다. "당신은 아직도 '민중 미술가'인가" 그에게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파도가 춤추고, 사과가 익고, 달이 뜨는 것. 그 모든 것이 다 '민중'이라 생각한다. 굳이 '민중'의 개념을 정치적으로 협소화할 필요가 있겠나."

그의 작품은 제주의 속살과 자연을 탐색하고 있다. 작품 '개천'(2010)은 바람 많은 섬, 제주의 전형적 풍경. 비바람 몰아치며 괴성을 내뿜던 하늘이 문득 한 줄기 서광을 내뿜으며 열리는 듯한 장면을 포착했다.

입동(立冬) 무렵 꽁꽁 얼어붙은 듯한 하늘의 초승달도, 흐린 날 구름에 갇힌 보름달도 그에겐 모두 그림의 소재. "내 그림의 주요 축은 천지만물의 생생함을 표현한다는 동양화 정신, 기운생동(氣韻生動)이다. 자연을 그리되, 구속되지 않고 주요 요소만을 뽑아 오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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