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이 불도저… 여자라고 힘든 티 내기 싫었죠"

"이제껏 저는 거센 바람을 맞으며 개척자처럼 걸어왔던 것 같아요. 그게 제 경쟁력이죠."

3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만난 이금형(55) 경찰대학장 내정자 말이다. 그는 1977년 19세 나이로 순경 공채에 합격, 29일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치안정감 승진 예정자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순경으로 시작해 9번 승진을 거쳤다. 치안정감은 경찰청장(치안총감) 바로 아래 계급으로 경찰 조직 내 5명밖에 없다.

충북 청주 출신인 그의 원래 꿈은 화가였다. 그러나 5년간 암 투병을 하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당시 경찰이었던 삼촌의 권유로 여경이 됐다. 그림 실력이 뛰어나 몽타주 요원으로 선발되면서 과학수사부에 들어갔다. "5남 1녀 중 중간이라선지 어려서부터 남성 문화에 익숙해요. 전쟁 만화를 보고 딱지치기를 하며 놀았죠."

그는 "여성이라고 힘든 일을 못 한다는 티를 내기 싫었다"고 했다. 임신 사실을 동료에게 알리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토막 살인을 당한 시체의 썩은 손목을 붙잡고 지문을 채취했다. "삶에서 엑스트라가 되지 않고, 프로가 돼 인정받겠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요."

그가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2001년 경찰청 여성실장이 되면서부터다. "한 초등학생이 납치·성폭행을 당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이 분야에서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죠." 2005년에는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으로 '성매매와 전쟁'을 주도했다. 학교 폭력법과 실종 아동법 등을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

별명이 '불도저'다. 경찰 내 대표적 여성·가정 폭력 전문가인 그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하기 위해 동국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뛰어난 경찰이지만, 집에서는 '계모'로 불린단다. 대형 유통회사 임원인 남편도 시간 여유가 없으니 시댁에서 아이들을 돌봤다. 그는 "육아와 가사를 여성 혼자만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여성만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가. 남성에게도 똑같이 '집에서는 어떠냐'고 물어봐 달라"고 했다.

그는 2일 경찰대학장에 취임한다. "제가 순경 출신이라 경찰대의 터닝포인트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경찰대 내에 종합112지령실을 만들고 실습 위주로 현장 능력을 높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