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비슷한 건물들, 지겹지 않나요?"

이 사람의 건축은 자연으로 출발해 판타지로 끝난다. 그의 건물은 공상만화에 나올 것 같은 형상에, 나무와 흙으로만 만들어 원시인의 집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한다. "그의 건물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으나, (예전에 이별했던 것인 양) 그립다"(일본 건축가 구마 겐고).

일본 건축가 후지모리 데루노부(藤森照信·67)의 건축 이야기다. '야방가르드('야만(野蠻)'+아방가르드)' '인터내셔널 버네큘러(국제적 토착주의) 건축가' 등으로 불리며 건축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그가 최근 고려대 초청 강연차 한국을 찾았다. 그는 현재 도쿄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오직 자연에서만 재료를 취하고, 콘크리트·유리 같은 인위적 재료는 전혀 쓰지 않는 그의 건축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처럼 어딘가 낯설고 환상적이다. 밤나무 두 그루 사이에 위태롭게 얹힌 작은 찻집 '다카스기안(高過庵)', 쇠줄로 양쪽으로 잡아당겨 공중에 띄워놓은 찻집 '소라도부도로부네(空飛ぶ泥舟)' 등이 대표적이다.

"나는 일부러 다다미나 쇼지(미닫이문)를 쓰지 않아요. '전통적' '일본적'이라는 틀로 사람들이 내 건축을 보는 게 싫어서요." 그는 "내가 추구하는 건 청동기 시대 이전, 양식(樣式)이 생기기 전의 건축"이라며 "그런 건축이야말로 '어디서 본 듯한 건물'만이 판을 치는 현대 건축계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줄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고 했다.

그는 건축주를 비롯해 자원자들을 공사에 참여시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건축과 사람의 거리를 가깝게 하기 위해서"다. "원래 인간은 누구나 자기 집을 짓고 살았어요. 신기한 건 모든 건축주들이 놀랄 만큼 즐거워한다는 거죠."

올해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이토 도요오가 선정되는 등 일본 건축계가 잇따라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후지모리 교수는 "일본 건축계는 100여년의 역사를 거치며 탄탄하게 다져온 공력이 있는 데다, 단게 겐조 등 1세대 건축가들이 일본 전통을 확실하게 재해석해줌으로써 나를 비롯한 후배들이 그런 강박으로부터 매우 자유로워진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건축계에 전통과 현대에 대한 진지한 재해석을 권했다. "재해석이란 단순히 전통 건축과 현대 건축을 외양적으로 합치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하면 100% 실패합니다.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을 예로 들면, 그 공간 공간의 연속적인 연결, 비례감 있는 기둥 같은 내재적인 특성을 바라봐야 합니다. 바로 이런 것을 어떻게 현대에 해석해 내느냐가 관건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