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줌인] "훈남은 유모차 직접 고르죠" 육아시장 흔드는 아빠

육아용품은 요즘 누가 살까? '당연히, 아이 엄마'라고 대답했다면 당신은 구세대(舊世代)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다.

회사원 윤민영(38)씨는 "아내보다 내가 육아용품에 관심이 훨씬 많다"고 했다. "작년 4월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조립형 아기 침대부터 샀어요. 기저귀 가방도 제가 샀고요. 아이와 산책할 땐 제가 메고 다닐 텐데, 꽃무늬 있는 건 좀 그렇잖아요. 아기 띠는 박람회 돌며 착용해본 다음 제 체형에 맞는 걸로 골랐고요. 또…."

◇아빠를 잡아라

육아용품 업계 사람들은 "요즘 아빠 소비자를 잡기 바쁘다"고 했다. 한동안 아기 물품의 구매결정권을 전적으로 엄마가 쥐고 있었다면, 최근 1~2년 사이엔 아빠들이 직접 아기 물품을 고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주식회사 '베페' 황태현 대리는 "할리우드 스타들 있죠? 브래드 피트 같은 남자. 품에 아기를 안고 다니잖아요. 요즘 젊은 아빠들 사이에선 그렇게 '아기를 잘 돌보면서 옷차림도 세련된 아빠가 정말 근사한 아빠'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면서 "업계에선 이들을 다이퍼 대디(Diaper Daddy·기저귀 갈아주는 아빠)라고 부른다. 엄마보다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멋쟁이 아빠를 일컫는 말"이라고 말했다.

'다이퍼 대디'의 출현은 각종 통계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매년 개최되는 '서울 국제 임신·출산 육아용품 전시회' 주관사에 따르면 2003년만 해도 전체 관람객 중 남성 비율은 25%에 불과했지만, 2012년엔 40%로 크게 늘었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이 작년 한 해 육아용품 판매 결과를 분석해보니, 전체 판매 금액의 40%는 남성이 지불했다고 했다. 주식회사 '베페'가 작년 7월 임산부 3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10명 중 6명(58.38%)이 "육아용품을 살 때 결정권을 남편이 쥐고 있다"고 답했다. "남편이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고 한 경우는 19.46%였다.

숫자는 업계를 움직인다. 유모차 회사 '맥클라렌'은 "매년 예쁘고 똑똑한 엄마를 뽑는 '맥퀸 선발대회'를 진행했는데, 올해부턴 멋지고 다정한 아빠를 뽑는 '맥킹 선발대회'도 같이 진행하려고 한다"고 했다. 고가의 유모차 '맨해튼'을 만드는 독일 호크 사(社)도 올해 초 "아빠들은 무채색 유모차를 선호한다"면서 '럭셔리 블랙 프레임'이란 제품을 출시했고, 육아용품을 수입·유통하는 회사 세피앙의 '페투니아 피클 바텀'도 최근 '남성용 대용량 백팩'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작년 말 미국 뉴욕타임스는 '아빠가 바비인형과 시장을 바꿔놓았다(More Dads Buys the Toys, so Barbie and Stores, Get Make- overs)'는 기사를 게재했다. 바비인형을 만드는 세계 최대의 완구회사 마텔 사(社)가 작년 12월 처음으로 바비인형 조립형 세트를 출시한 것이 계기였다. 아빠가 인형을 조립해 딸에게 선물할 수 있도록 개발된 조립형 바비 세트를 통해 딸 장난감 선택에까지 미친 '아빠 파워'를 분석한 기사였다.

◇'육아도 잘해야 멋진 남자'확산

전문가들은 다이퍼 대디의 출현 이유를 두고 "맞벌이 가족이 급증하면서 남자들도 가사와 육아의 분담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된 것, 미국 할리우드 영화 같은 각종 미디어에서 젊은 남자가 아이 돌보는 모습을 당연하게 보여준 것 등이 큰 요인"이라고 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육아휴직을 신청한 남자 근로자가 올해 2000명을 넘어설 거라는 보도가 보여주듯,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좋은 남자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고 했다. "거리에서 유모차를 미는 사람의 대부분이 아빠다. 아이를 안고 다니거나, 유모차를 끌고 기저귀 가방을 드는 식의 근력을 쓰는 육아는 특히 아빠가 도맡는 분위기가 됐다. 육아에도 남녀 분업이 생긴 셈이다."

여성학자 변혜정씨는 "2007년쯤 몇몇 지자체에서 남자 화장실에 기저귀갈이대를 설치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아빠 육아는 일부의 얘기였지만, 2010년을 넘기면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북유럽·미국·일본 등에서 불어온 아빠 육아 문화가 한국에도 상륙한 결과"라고 말했다. "최근엔 아기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는 일도 엄마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하는 아빠가 늘고 있다더군요. 진정한 다이퍼 대디의 등장은 이제부터 시작인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