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장애인들 미술 치료로 새 삶

그녀가 처음부터 특별한 재능을 보인 건 아니다. 꼭 10년 전인 2003년 경기도의 한 정신병원. 정신분열 증세로 2년 넘게 입원하고 있던 주영애(47·정신장애 2급)씨에게 미술 치료를 위해 주어진 도화지 한 장이 그녀를 화가(畵家)의 길로 안내했다. 도화지에 그려진 화려한 여인의 모습에, 미술 지도교사와 정신과 의사 모두 "와~" 하며 감탄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그녀는 마음이 내킬 때마다 그림을 그렸다. 2005년 퇴원한 뒤에도 한 달에 한두 번꼴로는 대형 화폭에 크레파스로 드레스나 발레복을 입은 여인을 그렸다. 뚜렷한 테두리와 강렬한 색채의 여인은 주씨의 소망과 열정을 반영한다는 게 미술 전문가들의 평가다.

마치 빈센트 반 고흐(Gogh)의 작품들이 그의 광기(狂氣)에 의존했다는 평가처럼, 주씨처럼 정신 질환을 앓지만 보통 사람들이 표현하지 못하는 정신세계와 남다른 예술혼을 가진 이들이 있다.

선천적으로 지적장애가 있던 이종우(23·지적장애 3급)씨도 하얀 도화지만 있으면 누가 말을 시켜도 싫어할 만큼 집중력이 좋아진다. 로봇이나 자유의 여신상 등 좋아하는 주제를 반복해서 그린다. 특수학교 시절 그의 그림이 인정받으며 지난 2009년 전국장애우청소년미술공모전에서는 문화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 가까이 정신병동에서 지냈거나 지금도 병원을 오가는 사람 가운데 남다른 예술적 재능을 가진 이들을 하나둘 찾아내 예술가의 길로 이끈 주인공이 있다.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김통원(56) 교수는 전국 특수학교, 복지시설 등을 수소문해 예술적 능력이 있는 작가를 모으고, 2008년 '한국 아르브뤼'를 결성한 뒤 2009년 10월부터는 전시회도 열기 시작했다.

'아르브륏(Art Brut)'이란 제2차 세계대전 말 프랑스 화가 장 뒤뷔페(Dubuffet)가 정의한 말로, '정제되지 않은 순수한 예술'을 뜻한다. 정신장애 예술가들의 작품을 일컫기도 한다. 김 교수는 "사회복지와 미술을 접목하는 관점에서 이 운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아르브륏 운동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스위스 로잔에는 지난 1976년 아르브륏 미술관이 개관했을 정도로 연원이 깊다. 미국 뉴욕에서도 1993년부터 매년 '아웃사이더 아트 페어(Outsider Art Fair)'가 열린다.

이처럼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재능을 찾아내 장점으로 살리는 것은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이들이 사회로 편입되는 길도 열어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정신병원 입원 환자의 평균 입원 기간(2011년 기준)은 170일에 이른다.

복지부 이중규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정신 병력으로 5~6개월 병원 생활을 거치고 나면 '정신병원에 수용됐었다'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사회생활에 적응하기가 어려운데, 아르브륏 활동이 활성화된다면 이들의 적응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아르브뤼'는 오는 3~8일 작가 12명의 작품 100여점을 모아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제6회 아르브뤼 아웃사이더 아트 전(展)'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