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니 만들 땐 '李대리 노트' '에쿠스 에르메스' 만들 땐 조원홍 전무 노트

"울산 공장에선 하루에 에쿠스 70~80대를 조립하는데, 에르메스 장인들은 에쿠스 단 3대를 꾸미는 데 2년이 넘게 걸렸어요. 시트 가죽에 쓸 소가죽 찾는 데만 몇 달이 걸리다니…. 꼼꼼함에 기가 질려버릴 정도였는데, 결국 그게 명품 회사와 저희의 차이더군요"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서울모터쇼 현대자동차 부스 중앙에 에쿠스 리무진이 화려한 조명을 받고 서 있다. 겉보기엔 큰 차이가 없는데 문을 열어보면 비로소 이 차가 길거리에 널린 여느 에쿠스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윤기가 흐르는 주황색 가죽, 푹신한 바닥, 군데군데 새겨진 섬세한 스티치(stitch)까지 세계적 명품회사 에르메스가 내부를 꾸민 '에쿠스 by 에르메스'다.

이 프로젝트를 총괄한 조원홍(49) 현대차 CMO(최고마케팅책임자·전무)는 "에르메스 가방은 1000만원, 우리 차는 평균 2000만원쯤 합니다. 우리 제품이 두 배는 비싼데도 왜 사람들은 에르메스를 살 땐 엄청나게 설레고, 우리 차를 살 땐 그렇게 느끼지 못할까요?"라고 물었다. 그 답을 얻기 위해 명품 중에도 알아주는 최고급 브랜드 에르메스와 손을 잡았다.

컨설팅 회사인 모니터그룹코리아 대표를 지낸 조 전무는 정의선 부회장이 '브랜드 고급화'라는 숙제를 풀 적임자라고 판단해 3년 전 직접 영입했다. '리브 브릴리언트(Live Brilliant)', '모던 프리미엄(Modern Premium)' 같은 최근의 현대차 브랜드 슬로건을 만들었고 제네시스-프라다도 그의 작품이다.

"에쿠스 에르메스는 그저 뽐낼 생각으로 만든 게 아닙니다. 클래식도 많이 들어봐야 알듯 가까이서 봐야 우리도 따라 할 수 있죠. 장인정신은 메뉴얼이 따로 없잖아요? 가죽을 고르는 법부터 기능적으로 세밀하게 배치하는 방법까지 낱낱이 보고 배웠습니다".

실내 디자이너와 기술 개발 연구진 등 10여명의 프로젝트팀이 에르메스 본사가 있는 파리와 공방이 있는 팡탱(pantin)을 수십 차례 오갔다. 정의선 부회장과 에르메스 CEO도 파리와 서울에서 한 차례씩 만났다. 이 과정에서 10여가지 배울 점을 담은 '에르메스 노트'가 나왔다. 과거 현대차가 포니를 독자 개발하려고 이탈리아 디자인센터의 설계와 디자인을 낱낱이 베껴 적은 '이대리 노트'와 흡사하다.

조 전무는 "기능을 더 집어넣고 가격을 올린다고 고객들이 현대차를 명품으로 알아주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며 "보이지 않는 가죽 뒷면까지 신경 써서 만들어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것, 그게 명품 업체의 자세였다.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바로 이 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