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작품은 10년마다 껍질 벗는다

1960년 10월 5일 덕수궁 북쪽 벽. 혈기 방장한 20대 작가 12명이 격정적 추상화 50여 점을 붙였다. 미인도나 정물 같은 보수적 화풍만 선호하는 국전(國展·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 경향에 반발한 전시였다. 그중에 서울대 회화과를 갓 졸업한 청년 윤명로도 있었다. 그는 바로 전해 국전에 실존주의를 주제로 한 그림 '벽B'를 출품해 특선했지만, 등용문을 박차고 나와 반(反)국전운동에 참여했다. 그 후로 50년, 그의 화풍은 자기반성과 해체, 개혁과 진화를 거듭했다.

윤명로(77) 서울대 명예교수 회고전 '윤명로:정신의 흔적'이 6월 2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본관에서 열린다. 50년 화업을 총망라하는 작품 60여 점이 나왔다. 10년 주기로 꾸준히 변화해 온 그의 작업 세계가 여과 없이 펼쳐진다. 1960년대 당시 유행하던 앵포르멜 추상회화에 몰두했던 그는, 1970년대엔 캔버스 위에 두껍게 칠한 물감이 갈라지고 터지는 현상을 그대로 보여준 '균열' 연작에 사회의 붕괴와 혼동을 담아냈다. 1980년대 '얼레짓' 연작에서 전통 문인화의 미감을 보여줬던 작가는 1990년대부터 거대한 자연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 결과물이 천 위에 아크릴물감으로 채색한 후 고운 쇳가루로 산수(山水) 이미지를 그려 산화시킨 2000년대의 '겸재예찬' 연작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나는 형태와 언어의 한계를 넘어선 세계를 표현하고 싶어서 추상 미술에 몸담았다. 세계의 본질을 그리려 갖가지 실험을 거듭했다"고 했다. "피카소는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예술은 모방이 끝날 때 시작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자연을 모방하길 거부해 추상을 시작했지만, 역설적으로 결국 자연으로 돌아온 셈이다." (02)2188-6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