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시대 걸맞은 대장경 작업 끝내"

"고려대장경을 전산화하겠다고 했을 때 다들 말렸습니다. 늘 전투하는 기분이었지만 기술의 놀라운 발전에 힘입고 이 작업에 공감한 여러 분의 도움으로 예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각종 대장경의 전산화를 추진해온 고려대장경연구소가 최근 창립 20돌을 맞았다. 고려가 국력을 모아 동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집대성한 대장경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의 중심에는 연구소 이사장 종림(宗林·69) 스님이 있다. 창립 20돌 기념 법회에서 감사패를 받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랭커스터 미국 버클리대 명예교수(불교학), 이태녕 서울대 명예교수(문화재보존학), 소흥렬 포항공대 명예교수(철학), 한용외 전 삼성전자 사장, 작곡가 김수철씨 등 각계 인사들이 '백만불짜리 할배의 미소'를 가진 종림 스님과 긴 세월을 함께해 왔다.

1972년 지관(智冠)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종림 스님이 대장경 전산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0년대 초 해인사 도서관장을 맡았을 때다. 우연히 칼 세이건의 '에덴의 용(龍)'을 읽고 컴퓨터의 위력을 알게 된 그는 당시로서는 최신이던 8비트 컴퓨터를 구해 대장경의 목차와 해제를 한글로 입력했다. 하지만 그때는 아직 한자 입력 방법이 개발되지 않았을 때다. 그러다 1991년 방문연구원으로 찾은 일본 교토 하나조노[花園] 대학에서 불교문헌 원문을 입력하는 것을 보고 오랜 꿈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귀국 후 그는 해인사 스님들을 설득해 '대장경연구소' 간판을 걸었다.

연구소의 목표는 팔만대장경 원문을 담은 CD-ROM 제작이었다. 꼬박 3년이 걸려 원문 5200만자 입력을 완료했지만 목판본에 나타나는 이체자(異體字) 3만2000개를 원형대로 수록하는 작업에 다시 4년이 걸려 '고려대장경 전산화본'은 2000년에 완성됐다. 다음 작업은 팔만대장경에 앞서 만들어졌으나 몽골군 침입으로 불타버린 초조(初雕)대장경 복원이었다. "작업이 끝나갈 무렵 학자들이 '초조대장경은 안 하느냐?'고 물어요. 저도 연구소 이름값을 하려면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초조대장경은 1960년대 일본 교토 남선사(南禪寺)와 대마도 등에서 인쇄본이 대량 발견됐고, 국내에서도 일부 확인돼 전체 6000권 중 2500권이 지금까지 파악됐다. 대장경연구소는 일본 하나조노 대학과 함께 초조대장경 DB를 구축했고 복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연구소의 또 하나 과업은 의천(義天)이 편찬한 속장경(續藏經)의 복간이다. 속장경은 초조대장경과 함께 불탔지만 목록이 남아 있어 한국과 일본의 사찰·도서관 등을 조사하면 상당 정도 복간할 수 있다. 종림 스님은 "그렇게 되면 정보화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대장경을 조판하는 작업을 끝내는 셈"이라며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