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사야 놀~자] 조세회피지역은 왜 생겼고 어떤 역할을 하나요?

英 "조세회피지역 기업 명단 밝힐 것" <조선일보 2012년 11월 26일자 A18면>

케이만 군도와 맨 섬 등 자국령(領) 조세회피지역이 많은 영국은 이 지역에 비공개로 등록된 기업과 금융 계좌 명단을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일간 가디언이 24일 보도했다.


다시 풀어 읽는 경제기사

금융 위기와 고령화로 국가 부채와 재정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저성장이 계속되면서 세금을 거둬 재정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전 세계적으로 재정 건전성 확충 방안의 하나로 주목받는 것이 지하경제의 양성화 정책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흐름에 맞춰 최근 역외(域外) 탈세 적발을 강화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탈세와 검은돈, 돈세탁의 글로벌 거점 역할을 하는 국제적 조세회피지역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글로벌 규제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오늘은 조세회피지역이 왜 생겨났고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며 글로벌 규제 강화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변모해갈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세회피지역이란 무엇이고 왜 생겨났나요?

흔히 부자들의 천국으로 알려진 조세회피지역은 영어의 'tax haven'을 번역한 것입니다. 조세회피지역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공통적인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현저히 낮은 세율입니다. 심지어 무(無)과세 지역도 있어 정상적인 조세권을 가진 국가와는 차별됩니다. 둘째는 비밀주의입니다. 재산과 소득의 주인이 누군지 밝히지 않습니다. 정보 공개에 따른 공익보다 사생활을 중시하기 때문에 국가 간 고객 정보 교환을 하지 않습니다. 셋째는 일종의 '울타리 치기(ring fencing)'입니다. 영토의 일정 지역을 조세회피지역으로 지정하고 본국과 조세회피지역을 조세 제도상 분리하는 것입니다. 가령, 대표적 조세회피지역인 버뮤다는 영국의 해외 영토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조세회피지역이 생겨난 것일까요? 국가 간 무역과 자본 이동이 없었다면 조세회피지역도 만들어질 이유가 없었습니다. 국제무역과 자본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거래의 양상이 복잡다기화한 까닭에 비밀주의의 여지가 커진 것입니다. 세계화에 따른 국가 간 자본 유치 경쟁에 조세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조세회피지역이 생겨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투자자에게는 투자 지역을 선택할 때 세후 수익률과 비밀주의와 낮은 규제가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문제는 조세 정책이 자율적인 국내 정책 영역이라 국제 공조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전 지구적인 세계 정부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구속력이 없는 국제기구가 조정 능력을 갖고 있지도 않기 때문에 조세회피지역이 존재할 수 있는 겁니다.


◇조세회피지역은 어디이고 그 규모는 얼마나 되나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세회피지역을 지정하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50~60곳 정도입니다. 세율과 비밀주의에 따라 소득이나 재산 관련 직접세가 전혀 없는 버뮤다, 케이만 군도, 바하마 같은 극단적인 곳도 있고, 과세는 하되 저율로 과세하는 저지 섬, 싱가포르, 바레인, 이스라엘, 버진아일랜드 같은 곳도 있습니다. 또한 일반적으로는 정상적 과세를 하나 해외에서 발생하는 소득에 대해서 세금을 면제해 주는 홍콩과 펀드 등 특정 부문에 한해 세제 혜택을 주는 아일랜드나 룩셈부르크 같은 나라도 있습니다. 공통점은 대부분 작은 나라이거나 선진국의 해외 영토입니다.

비밀주의 때문에 조세회피지역의 전체 자산 규모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적게는 8조달러, 많게는 21조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해외 직접투자(FDI)의 30%가 조세회피지역을 거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특히, 케이만 군도와 버뮤다는 조세회피지역의 '빅 2'입니다. 인구 5만7000명인 케이만 군도는 헤지펀드의 천국이며 인구 6만5000명의 버뮤다는 재(再)보험회사의 천국으로 유명합니다.


◇투자자들은 조세회피지역을 어떻게 활용할까요?

조세회피지역은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투자자들이 거쳐 가는 곳이지 거기서 실제 비즈니스를 하지는 않습니다. 투자자들이 조세회피지역을 실제로 어떻게 활용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만일 A 기업이 국내에서 직접투자를 할 경우 해외 투자 소득에 대해 금융소득세를 부담해야 합니다. 그런데 A 기업이 페이퍼 컴퍼니를 케이만 군도에 만들어 거기서 해외 투자를 한다고 합시다. 페이퍼 컴퍼니는 케이만 군도에 설립되어 있지만, 실제 투자 집행은 미국, 홍콩 등 국제금융센터를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케이만 군도는 해외 원천 소득과 투자를 집행한 페이퍼 컴퍼니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으므로, A 기업은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투자 소득을 페이퍼 컴퍼니에 축적하게 됩니다. 물론 페이퍼 컴퍼니 투자 소득을 본국 A 기업으로 가져올 때 세금을 내야 하겠지만, 이것 역시 법적 청산이나 대여 등 방식을 통해 세 부담을 없앨 수 있습니다. 이런 예처럼 투자자들은 조세회피지역을 이용하여 해외 소득의 세 부담을 최소화하는 적극적 절세(ATP·Aggressive Tax Planning) 전략을 추구하곤 합니다.

◇앞으로 조세회피지역의 운명은?

금융 위기 이후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으로 재정 건전성이 나빠진 각국이 조세회피지역을 통한 세금 회피를 막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핵심 규제 방향은 조세회피지역의 비밀주의에 대한 규제 강화입니다. 이미 미국은 해외 계좌 조세준수법(FATCA)을 제정하여 모든 해외 금융기관에 미국 고객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유럽 국가도 협력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부자 고객 관리(PB)의 대명사 스위스 은행이 미국 요구에 굴복하면서 비밀주의가 약해지고 부자 고객이 이탈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조세조약의 적용 범위를 엄격하게 하는 것입니다. 조세조약은 국가 간 이중과세 문제를 해결하는 조약으로, 조세조약의 혜택은 원칙적으로 양국의 거주자에 한정합니다. 만약 비거주자가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조세조약의 혜택을 누리겠다면 이는 강하게 규제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각국에 조세 정책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한, 그리고 자본 간 경쟁이 지속되는 한, 조세회피지역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내부의 경쟁 역학과 지역 간 명암은 엇갈릴 것입니다. 실제 금융 위기 이후 스위스나 룩셈부르크, 저지 섬 등 유럽 조세회피지역은 다소 주춤하고 있고, 홍콩, 케이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은 상대적으로 약진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앞날은 조세 정책과 비밀주의를 지켜낼 국력에 좌우될 것입니다.


자본시장연구원·조선일보 공동기획
기사 문의는 (02)3771-0631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조정실


◆ 쉽게 배우는 경제 tip


조세조약

조세조약(tax treaty)은 소득과 재산에 대한 이중과세를 방지하고 탈세를 방지할 목적으로 국가 간에 맺는 협약을 말합니다. 조세조약을 맺지 않으면 국가 간 무역과 자본거래에서 발생하는 소득에 대해 양국이 모두 과세를 하게 돼 국가 간 상품과 자본거래를 위축시키고 개인이나 기업은 과도한 세금을 부담하게 됩니다. 조세조약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낮은 세율로 과세하거나 한 나라에서 낸 세금은 환급해주는 등의 편익을 양국 국민에게 제공하게 됩니다.


◆ 퀴즈

무역이나 자본거래에서 발생한 소득과 재산에 과세를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아주 저율로 과세하며, 고객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지역을 국제적 ○○○○ 지역이라고 합니다.

▲응모 요령: 모닝플러스 홈페이지(morningplus.chosun.com)의 이벤트 코너에서

▲일정: 4월 10일(수) 오후 5시 마감, 4월 12일(금) 당첨자 발표

▲경품: 이마트 상품권(1만원권) 모바일 교환권(40명, 각 1장)


지난 회 정답: 누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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