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1517㎞… '6070 원정대' 5년간 전국 밟았다

"해안 도로 어디선가 노인 수십명이 길을 걸어가고, 누군가의 하모니카 소리에 노래를 따라 부르는 걸 본 적이 있다면 100% 우리 일행이었을 겁니다. 편히 차 타고 갈 수 있는 길을 굳이 걸어온 '바보들의 행진'이었죠."

평균 연령 71세의 노인 70여명이 우리나라 동해안 최북단에서 출발, 동·남·서해안을 돌아 임진각까지 이어지는 1517㎞를 5년간 73일에 걸쳐 도보로 일주했다. 최고령자인 77세 윤종영씨까지 60~70대 노인들 단 한 명도 포기하지 않았다. 걷는 길이 알파벳 U자를 닮아서 '대한민국 U자 걷기'라 이름 붙인 노인들의 도전은 지난 6일 최종 목적지인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 도착하며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U자 걷기'는 함수곤(73)씨가 운영하는 이메일 뉴스레터 독자들이 2008년 4월,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출발해 강릉 경포대까지 일주일간 130㎞를 걸으며 시작됐다. 교육부에서 근무하다 2006년 은퇴한 함씨는 2007년 지인들에게 "조선일보가 보도한 '주말 걷기' 기사에 나온 길을 회원들과 함께 걷자"고 제안했다. 회원들은 점점 늘어났고, "내친김에 우리 조국을 걸어서 일주하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매년 4월과 11월에 만나 일주로를 11구간으로 나눠 걷기로 했다. 함씨는 "은퇴 후 하릴없이 집에 앉아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비록 노년에 접어들었지만 새로운 목표를 달성해 자아를 실현하자는 마음에서 '대한민국 U자 걷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전 준비도 철저히 했다. 함씨는 걷기에 참여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매일 1시간 이상 걷기 연습을 하고, 일주일에 100㎞ 이상을 걸어도 괜찮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아오라"고 주문했다. 걷기에 참여한 이들은 "건강에 이상이 없고, 집안에 근심·걱정이 없어야 일주일씩 걸을 수 있다"며 "우리는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2004년 고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이창조(72)씨는 부인과 함께 11구간을 모두 걸었다. 전립선·편도선·신장에 암이 발견돼 2005년부터 세 차례나 수술을 받았지만 걷기를 시작한 뒤 건강을 되찾았다. 이씨는 "은퇴한 뒤 뚜렷한 목표가 없었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일 새로운 목표가 생기니 삶에 활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박현자(여·73)씨는 "일주일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고, 남편 저녁 메뉴 걱정 대신 경치 구경을 하고 인생을 돌아볼 수 있었다는 점이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인천 송도에서 출발하는 최종 구간을 걷기 시작한 이들은 6일 오후 1시 30분, 최종 목적지에 도착해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지난 5년간 낙오자나 부상자 한 명 없이 걸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떡과 막걸리를 차려놓고 고사를 지냈다. 함흥이 고향이라는 정형진(76)씨는 "저 너머 북녘땅이 보이는데 여기서 돌아가야 한다니 아쉽기만 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노인들은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적힌 기관차 앞에서 "우리도 북녘 끝까지 더 걷고 싶다"고 외쳤다. 이들은 "통일이 된 조국을 걸어서 일주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