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 "귀순가수? 北에서 잘나가던 무역업자였습네다"

'귀순 가수' 김용(53)이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 홈쇼핑 사업자로 변신했다. 그는 현재 '베트남홈쇼핑'(HSV·Home Shopping Vietnam)과 '캄보디아홈쇼핑'(HSC)을 운영하는 지주회사 '한아홈쇼핑'의 회장이다. HSV는 베트남에서 2위 업체이고, 캄보디아는 그가 처음으로 개척한 시장이다. 이 공로로 작년 11월 캄보디아에서 훈장을 받기도 했다.

김용은 1991년 귀순 이후 '탈북 가수'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에서 그의 본업은 무역이었다. 중앙당 '책임지도원'으로 러시아 체코 등을 돌아다니며 '외화벌이'를 했다. 그는 "평양 국립교향악단 솔로를 3년 했는데 그만두고, 김책공대 기업경영학과를 나와 중앙당 해외무역 파트에서 일했다"며 "그때부터 인보이스(송장) 열고 물건 갖다 파는 데는 이골이 났다"고 말했다.

귀순도 무역 업무를 하다 발생한 '사고' 때문이었다. 어느 날 러시아 사할린 주(州) 정부에서 연어 300t을 팔아달라는 연락이 왔다. 김용은 이를 수완 좋게 싱가포르에 판매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물건 주인이 연형묵 당시 총리였다. "저는 중앙당 소속으로 김정일의 금고를 채우는 일을 맡았다면, 연형묵은 별도 조직이 있었는데 제가 모르고 손을 댄 것이었죠." 게다가 그가 팔아치운 연어는 김일성 생일(4월 15일)에 맞춰 평양 시민들에게 콩기름과 사탕을 공급하기 위해 확보해둔 물건이었다. 돈은 이미 중앙당에 들어갔고, 벌충할 수단도 없었다. 결국 이 일 때문에 김용은 스위스에서 망명을 신청한다. 그는 "남한에서 중앙당 소속이란 게 알려지면 귀찮은 질문이 많아질까 봐 가수 경력을 앞세웠다"고 했다.

남한에서 그는 북한 음식 전문점 '모란각'을 열었고, 한때 중국 톈진에서 호텔을 운영하기도 했다. 해외 홈쇼핑은 그의 세 번째 사업이다. 모란각은 한때 98호점까지 열었지만, 다 접고 지금은 일산의 본점과 미국 LA의 오렌지카운티점 두 곳만 남았다. 그는 "지역별로 '맛 관리'가 되지 않아 모두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며 "그 이후 냉면과 만두를 홈쇼핑에서 주로 팔았다"고 했다. 이 경험은 그가 베트남 홈쇼핑에 진출하는 발판이 된다.

"홈쇼핑에 물건을 공급하면서 구조를 알게 됐죠. 2010년 베트남에서 막 홈쇼핑이 시작되는 것을 보고 벤더(물품 공급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해 뛰어들었죠."

김용이 적극적으로 매달리자 HSV는 '직접 해보겠느냐'며 지분을 팔기로 한다. 그는 "큰 전쟁을 치른 베트남은 인구의 50~60%가 20~30대"라며 "향후 성장세가 아주 크다"고 했다. 현재 베트남의 경쟁자들은 1위 사업자인 CJ계열을 포함해 모두 한국의 롯데와 GS계열 홈쇼핑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외국기업 규제가 만들어진 후 들어와 보유 지분 한도가 49%인 반면, 김용은 HSV의 지분 95%를 갖고 있다. 그의 홈쇼핑 상호에 '베트남'이라는 국가명이 들어간 것도 유리하다.

현재 HSV에선 한국 중소기업의 화장품과 주방용품이 많이 나간다. 택배 시스템이 잘 구축된 한국과 달리 방송을 본 시청자들이 호찌민의 HSV본사 1층 전시장에 나와 직접 물건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HSV는 2012년 6월 본격적으로 방송을 시작해 7개월 만에 9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는 300억~400억원대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김용은 "베트남 사람들은 아직 한국 대기업 브랜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실력 있는 중소기업 제품을 많이 가져다 팔 생각"이라며 "북한에서 왔지만 가장 자본주의적인 유통업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