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김형태의 '예술과 금융'] 금융의 미래, 세잔에게 答이 있다

회화를 구성하는 양대 축은 '형태'와 '색채'다.

화폭이란 공간 속에서 형태와 색채가 서로 상호작용하여 빚어낸 결과물이 바로 회화 작품이다. 회화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형태가 강조되던 시대가 있었고, 색채가 부각되던 시대도 있었다. 어찌 보면 회화의 역사는 형태와 색채의 경쟁의 역사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하다.

◇회화의 역사는 형태와 색채 간 경쟁의 역사

그림의 중심이 형태에 놓여지면 화가는 대상의 형태를 정확히 묘사하는 것, 즉 재현에 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반면 색채가 부각되는 그림에선 대상의 재현보다 색을 통한 화가의 감정 표현이 더 중요해진다. 미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형태가 강조되면 색이 묻히고, 색이 강조되면 형태가 위축된다.

경제의 세계도 비슷하다. 경제를 구성하는 양대 축은 실물과 금융이다. 실물경제는 국가 경제의 기본 형태를 구성한다. 경제의 윤곽선을 그린다는 말이다. 비유하자면 그림의 '형태'에 대응하는 것이 실물경제다. 그런데 경제가 실제로 돌아가려면 실물경제에 자본이 공급되어야 한다. 바로 금융의 역할이다. 그림으로 치면 주어진 형태 안에 '색채'를 공급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보면 금융은 그림의 색채에 대응한다. 경제의 역사도 회화의 역사와 비슷하다. '실물'이 강조되던 시대도 있었고 '금융'이 주목받던 시대도 있었다.

◇사실주의, 낭만주의 그리고 인상주의

회화 사조 중에서 특히 형태를 강조한 대표적 유파가 사실주의다. 사실주의 거장 쿠르베는 "내가 천사를 그리길 원한다면 내게 그 천사를 보여 주시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회화의 본질은 실재하는 사물이나 현실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것이지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림1: 쿠르베의'안녕하세요, 쿠르베씨'〉. 사실주의 회화에서는 형태의 사실적 묘사가 화폭을 주도하기 때문에 색채는 뒤로 밀린다. 경제의 기본 뼈대와 형태를 실물경제라고 보면, 사실주의 경제는 있는 그대로의 실물경제만을 강조하는 것과 같다. 색채로 비유되는 금융은 실물을 보조하는 기능만을 수행하게 된다. 색이 형태에 압도되어 화면에서 묻히듯 금융은 실물에 묻혀버린다.

사실주의와는 반대로 색채가 형태를 리드한 유파가 낭만주의다. 낭만주의로 오면서 화가의 주관적 감정이 격정적인 색채로 표현되었다.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색채만으로 회화의 질서를 창출했다. 낭만주의 대표적 화가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의 경우, 그림에서 형태 즉 무엇을 그렸는지는 그리 분명치 않다. 중요하지도 않다. 꿈틀대는 격정적 색채만이 화폭을 지배할 뿐이다.

형태를 무시한다는 측면에서 낭만주의보다 한 걸음 더 나간 유파가 있다. 바로 인상주의다. 인상주의는 애초부터 형태에는 관심이 없었다. 인상파 화가들이 그리려 한 것은 빛으로 환원된 순간적 인상이다. 그들에겐 색채가 주(主)고 형태는 부(副)다. 형태가 무시되었기 때문에 무엇을 그렸는지 명확히 알기 힘들다 〈그림2: 모네의'해돋이'〉. 인상파 화가들은 대상의 형태로부터 독립을 시도했기 때문에 대상의 존재감이 주는 묵직함을 잃어버렸다. 반짝이고 화려하고 인상적이지만, 가볍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마치 실물과 연결고리가 끊긴 금융, 기초자산의 뒷받침이 없는 파생상품을 보는 듯하다.

◇경제의 사실주의, 낭만주의 그리고 인상주의

회화에서 '색채를 위한 색채의 시대'가 있었던 것처럼 경제에도 '금융을 위한 금융의 시대'가 있었다. 바로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 발생 전 미국 등 금융 선진국들의 경제 모습이었다. 1980년만 해도 세계 금융자산 규모는 세계 국민총생산(GDP)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회화로 치면 사실주의에 가깝다. 그러나 1990년에는 금융자산 규모가 GDP의 두 배, 2002년에는 세 배로 증가했다. 경제의 색채라 할 수 있는 금융이 실물경제를 주도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시대를 경제의 낭만주의라 부를 만하다. 2008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직전, 이 비율은 4배에 이르게 된다〈그래프〉. 미국의 경우만 보면 20배에 달했다. 금융이 실물을 압도했단 말이다. 이 정도면 색채에 압도되어 형태가 거의 와해된 인상주의 그림에 가깝다. 색을 위한 색의 향연처럼 금융을 위한 금융의 향연을 보는 듯했다. 경제의 인상주의 시대다.

◇세잔의 형태와 색채 통합… 미래 금융에 주는 시사점

형태 위주의 사실주의와 색채 위주의 인상주의를 변증법적으로 통합한 화가가 바로 세잔이다. 그래서 세잔을 '현대 회화의 아버지'라 부른다. 사실주의에서는 사실적 형태에만 집착하다 보니 색채가 경시되었다. 인상파는 빛으로 환원된 색채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형태가 와해됐다. 이와 달리 세잔은 매 순간 변하는 인상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대상의 본질적 실체를 표현하려 했다. 이를 위해 대상을 원통, 원추, 공 등 기본 원형으로 재구성했다. 세잔의 그림 '사과와 오렌지〈그림3〉'를 보자. 세잔의 사과는 전혀 먹음직스럽지 않다. 마치 공처럼 보인다. 테이블에 깔려 있는 보자기도 산처럼 묵직해 보인다. 세잔에게는 형태와 색채가 하나다. 윤곽을 먼저 그리지 않고 색을 툭툭 칠하는 것이 곧 형태를 표현하는 것이다. 세잔이 한 말이다. "형태와 색채는 결코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색채가 풍부해졌을 때 형태도 풍만해진다."

금융도 세잔의 아이디어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실물과 금융은 결코 따로따로 작동되는 것이 아니다. 실물 발전 없이 금융 발전 없고, 금융 발전 없이 실물 발전이 있을 수 없다. 금융의 미래, 세잔에게 길을 물으면 어떻게 답할까. "형태와 색채가 조화를 이루듯 실물경제와 금융이 균형 있게 통합되어야 멋진 경제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창조경제도 마찬가지다. 창조 산업과 창조 금융이 같이 가야 창조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