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개발로 짓밟혔던 을숙도, 다시 자연을 숨쉬다

지난달 30일 오전 부산 사하구 하단동 을숙도 '낙동강하구에코센터' 옆 피크닉 광장. 푹신한 평지 흙길에 연분홍 왕벚꽃잎이 날렸다. 가족·연인·친구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알록달록 나들이 옷차림으로 나선 사람들로 북적댔다. 2시간여 동안 8㎞를 걸으며 을숙도를 일주하는 '을숙도 생태공원 개장기념 걷기대회'에 참가한 인파들이었다. 조금 걸어 바닷가 쪽으로 접어들자 간혹 "끼룩" "꽤액" 하는 물새 소리가 들렸다. 이 대회에 참가한 김동준(35)씨는 "햇살 좋은데 벚꽃잎 날리지, 물새들 날지 환상적이다"라고 말했다.

오랜 세월 낙동강 하구 은둔의 모래섬이었던 을숙도가 철새와 사람,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는 새로운 개념의 생태공간으로 거듭났다. 새들이 많고 물이 맑다란 뜻의 을숙도(乙淑島) 일주는 종전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이근희 부산시 낙동강관리본부장은 "철새가 머무는 서측 습지를 비롯해 을숙도 전체를 일반에 전면 개방하는 것은 사상 처음"이라며 "앞으로도 겨울철 철새 도래지를 제외하곤 계속 개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을숙도는 30여년 전만 해도 100만 마리 이상이 찾는 동양 최대 철새 도래지로 유명했던 곳이다. 우거진 갈대숲은 50대 이상 세대들에겐 인기 데이트 코스였다. 그러나 1987년 부산 지역 수돗물 안정적 공급을 위해 하굿둑이 설치되고 준설토적치장·쓰레기매립장·분뇨해양처리장 등이 들어서면서 일반인 접근이 어려운 '금단(禁斷)의 땅'이 됐다. 철새들도 급감했다. 그러다 2000년 4월부터 차츰 파밭과 준설토적치장, 쓰레기매립장, 분뇨해양처리장을 없애고 인공습지 등을 만들었다. 초기엔 재정 부족으로 난항을 겪었으나, '4대강 살리기' 예산 투입 덕에 속도가 빨라진 이 '을숙도 생태공원화 프로젝트'가 최근 마무리돼 이날 처음 전면 개방하게 됐다.

가운데는 두툼하고 머리와 끝은 갸름한 고구마 형상을 한 3.52㎢(106만평) 크기의 '을숙도 생태공원'은 생태호수, 인공습지, 생태수로, 탐조체험장, 뱃길 생태 탐방로, 산책로, 시민광장(메모리얼 파크), 물새 대체서식지, 생태이동통로 등으로 이뤄졌다.

을숙도 곳곳에 포진한 이들 호수와 습지 주변엔 무성한 갈대숲이 펼쳐지고 부채꽃·구절초·패랭이 등 야생화가 심어졌다.

오는 7월쯤엔 생태수로와 호수를 돌며 자맥질하는 새떼·수생식물 등을 살피는 10~30인승 나룻배·유람선이 운영될 예정이다. 남쪽 끝에 있는 탐조체험장 부근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쇠백로·청둥오리·물수리·괭이갈매기 등을 볼 수 있다.

낙동강하구에코센터(☎051-209-2000, http://wetland.busan.go.kr) 옆 인공습지 1만5000㎡에는 오는 6월쯤 국내 최초의 '물새 대체서식지'가 만들어진다. 신준철 낙동강하구에코센터 야생동물보호팀장은 "현재 낙동강야생동물치료센터 안 20㎡가량의 철장에 보호 중인 한쪽 날개뿐인 큰고니를 비롯, 큰기러기·청둥오리·쇠오리·원앙새 등 15마리가 이곳에서 생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을숙도를 가로지르는 하굿둑 길 좌우에는 잔디밭 등으로 이뤄진 피크닉광장, 낙동강의 물과 생태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낙동강문화관, 각종 문화 공연이 연중 끊이지 않는 을숙도문화회관 등이 들어섰다.

낙동강하구에코센터는 생태공원 전면 개방에 맞춰 작년 11종이었던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올해 수생식물관찰·갈대체험·선박탐방체험 등 24종으로 2배 이상 늘리기로 했다.

김병곤 부산시 환경녹지국장은 "도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생태·문화·여가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은 아마도 세계에서 을숙도뿐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