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4.09 03:01 | 수정 : 2013.04.10 10:57

[생필품값 줄줄이 인상… 생활物價 전방위 압박]
원당 가격 24% 하락했지만 국내 설탕값 고작 4~6% 내려
대부분 업체가 시장 독과점… 새정부 물가 안정 강조하고
작년 영업실적 좋은데도 경쟁이라도 하듯 '배짱 인상'

국내 밀가루 회사들은 지난 연말과 연초에 걸쳐 밀가루 가격을 7~9%씩 올렸다. 국제 밀 가격이 작년 초부터 계속 올랐다는 것이 인상 이유였다. 국제 밀 가격 인상이 국내 밀가루 가격으로 반영되는 데 최소 3~4개월 이상 시차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밀가루 값을 올릴 때만 통한다. 국제 밀 가격은 작년 9월 부셸(27.2kg)당 9달러에서 최근 6.9달러로 23%나 내렸다.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밀가루 회사들은 아직 가격을 내리겠다는 말은 하지 않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국내 식품업체들은 원자재 가격 하락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탕 회사들은 최근 하얀 설탕의 가격을 일제히 4~6% 내렸다. 하지만 최근 국제 원당 가격은 파운드당 18센트(지난 2월 15일)로 2012년 7월 25일 고점 대비 24.2% 하락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렸다고 보기도 힘들다.

원인은 독과점

식품업체들이 가격을 마음대로 올리는 것은 국내 식품산업의 독과점 구조 때문이다. 매출이 1조원을 넘거나 육박하는 식품 대기업들은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설탕과 밀가루는 2~3개 업체가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의 사이다 시장 점유율은 80%대다. 간장시장은 샘표식품대상이 양분하고 있으며, 고추장은 대상과 CJ제일제당이 97%를 차지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2010년 시장구조 조사'에 따르면, 상위 1개사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이거나 상위 3개사 점유율이 75% 이상인 경우로 꼽힌 식품 업계는 담배·설탕·커피·맥주·위스키 등이었다.

독과점 산업의 이윤율은 31.1%로 제조업 등 전체 산업 평균(26.8%)보다 높은 반면, 연구·개발 투자 비율은 평균 1.4%로 전체 산업 평균(2.1%)보다 낮았다. 특히 위스키와 맥주는 연구·개발비가 매출액의 1%에도 못 미쳤다.

과다 인상하는 업체도

시장을 과점한 일부 업체는 지나치게 값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리온은 대형마트 판매가 기준으로 비스킷인 '오리지널 다이제'를 1260원에서 1600원으로 27% 올리는 등 작년 말부터 최근에 걸쳐 4개 제품을 20~30% 인상했다. 오리온은 가격 인상 이유로 밀가루 등의 원재료 가격 인상을 들었다. 하지만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 관계자는 "밀가루 값 9.3% 인상에 따른 과자 가격 인상 요인은 0.64%에 불과하다"며 "밀가루를 이유로 20~30% 가격을 올리는 건 이해 못 할 조치"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 첫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서민 물가 안정'을 첫 일성(一聲)으로 강조하고, 정부 출범 초기부터 차관급이 참가하는 물가대책회의를 소집했지만, 많은 기업이 아랑곳하지 않고 가격을 올렸다.

일부 업체는 눈치만 보고 있다. 작년 담합 혐의로 과징금 등을 문 기업들이 특히 눈치 보기가 심하다. 한 식품기업 관계자는 "가격 올리는 기업들을 보면 대단하다"며 "밀가루 가격뿐 아니라 여러 가지 인상 요인이 있지만 요즘 분위기에선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적은 좋은데도 가격은 대폭 인상

가격을 올린 업체들은 "힘들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자를 보는 식품 대기업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이익이 크게 늘어난 회사가 많다. 최근 과자값을 20~30% 올린 오리온은 지난해 연결 영업이익이 약 2637억원으로 2011년 2151억원보다 22.6% 증가했다. 대상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324억원으로 2011년에 비해 21.6% 증가했다. 세제와 섬유유연제의 가격을 올린 LG생활건강의 지난해 영업이익도 4455억원으로 재작년에 비해 20.3%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이익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전문 경영인은 자리를 보전하기 힘들다"며 "우리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가격을 올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바로잡습니다
▲9일자 B1면 "국제 밀 가격 23% 내렸는데…국내 밀가루값 요지부동" 기사에서 부셸(27.2kg)당 국제 밀 가격은 작년 902.5달러에서 최근 699달러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9달러에서 6.9달러로 떨어진 것이기에 바로잡습니다.

조선일보 조선닷컴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