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우 교수의 경영수필] 1등 기업 GE는 왜 無名의 삼성전자를 벤치마킹했을까

삼성전자가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올 1분기(1~3월)의 매출과 이익 규모가 작년 1분기 실적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사상 초유 실적을 올릴 것이라는 때 이른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왜 삼성이 강한가?'라며 삼성을 배우려는 세계 경제계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그런데 삼성이 오늘날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던 1990년대 중반에 한 초우량 글로벌 기업이 삼성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연구하려 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누구도 삼성에 주목하지 않던 1996년, 삼성전자의 행보를 예사롭게 보지 않고 벤치마킹하려는 회사가 있었는데, 바로 당대 최고 기업인 GE였다. 모두가 GE를 벤치마킹하고 있던 그때, GE의 최고경영자였던 잭 웰치는 오히려 삼성의 잠재력을 간파하고 배우고자 했다.

◇잭 웰치 "삼성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배워 오라"

당시 삼성전자는 '신(新)경영' 기치를 내걸고 질(質) 경영, 글로벌 경영을 추구하며 내부적으로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그저 반도체 부문에서 업계 평균을 웃도는 정도의 성과를 내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도 잭 웰치 회장은 삼성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했다.

"한국의 삼성이란 기업 행보가 심상치 않다. 지금은 미약하지만 분명 머지않아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한국으로 가서 그들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우리가 그들에게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라."

잭 웰치 회장의 지시에 따라 GE의 임원들이 한 컨설팅 회사의 팀과 함께 서울을 방문했고, 필자는 삼성전자의 글로벌 마케팅 팀장으로 그들과 삼성전자 간 창구 역할을 맡았다. 당시 우리는 일본의 전자회사들을 벤치마킹하기에 급급하던 때였는데, 하늘같이 여기던 초우량 글로벌 기업 GE가 도리어 삼성을 알고 싶다고 나서니 그저 얼떨떨하기만 했다. 그들은 서울을 방문한 후, 미국을 비롯한 주요 해외 거점에 나가 있는 삼성전자 책임자 인터뷰도 부탁했다. 미팅이 끝난 다음에는 자기들의 소감까지 피드백해 주었다. 그들은 "임직원들의 조직 몰입도, 뛰어난 현장 대응 능력과 스피드에서 삼성의 미래를 보았다. 무엇이 임직원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며 삼성의 연수원과 교육 시스템을 더 살피기도 했다.

◇앞으로 잘할 기업에 주목한 GE

흔히 벤치마킹이라고 하면 지금 잘하고 있는 기업, 즉 선두 기업의 전략과 기법을 익히고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잭 웰치 회장은 지멘스나 소니, 즉 '당시 잘하고 있던 기업'이 아니라 아무도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던 삼성을 '앞으로 잘할 기업'으로 보고 그 역량을 분석하고 벤치마킹하며 한 수 앞을 내다보는 행보를 택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 경영대 교수가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기존 제품의 성능에 미치지 못하는 간단하고 저렴한 제품으로 새 시장을 개척하는 전략)'을 논하기 이전부터 잭 웰치 회장은 이 파괴적 혁신의 가능성을 보았던 것은 아닐까?

많은 기업이 현재의 강자들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지키기 위해 그저 기존 게임 룰 안에서 '존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기존 제품을 개선해 고객을 공략하는 전략)'에만 관심을 가지고 경쟁자들을 벤치마킹하기에 바쁠 때, 잭 웰치는 삼성과 같은 한국 기업의 미래를 보았다. 당시 글로벌 시장에서 이룬 성과는 대단하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미국, 유럽, 일본의 기업들과 경쟁하며 파괴적 혁신을 성공적으로 시행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자기보다 못한 기업과 시장에서 배울 점을 찾아라

현재 존재하지 않거나 알려져 있지 않아 경쟁자가 없는 유망한 시장을 가리켜 '블루오션'이라고 하는데, 블루오션을 먼저 발견하고 차지하는 것은 성공의 중요한 부분이다. 벤치마킹하는 데도 블루오션이 있다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삼성을 벤치마킹한 GE의 행보가 그런 것이 아닐까? 이런 잭 웰치 회장의 DNA는 2001년 후임 CEO로 선임된 제프리 이멜트 회장에게 '역(逆)혁신 전략(reverse innovation)'으로 계승되었다.

이멜트 회장이 제창한 역혁신은 신흥시장의 '저비용 비즈니스 모델'을 선진국 시장에 적용하는 것으로 선진국의 고급 제품을 단순히 현지화 시켜 신흥 시장을 공략하던 옛날 방식을 뒤집어 이제는 신흥시장에서 먼저 혁신을 하자는 것이다. 그는 "거대 글로벌 기업에 역혁신은이제 선택 사양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예컨대 GE는 중국에서 개발한 휴대용 초음파 진단 기기가 선풍적 인기를 끌자 이를 좀 더 정교하게 개발해 미국 시장에 내놨는데 대성공을 거뒀다.

역혁신은 파괴적 혁신에 능한 신흥국의 역량을 활용하여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사업을 구축하고, 그 후 선진국에서 사업 전개를 꾀하는 것이다.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삼성을 '앞서' 벤치마킹한 GE, 그리고 선진국이 아닌 신흥 시장에서 배우는 역혁신은 모두 지금까지 보고 배웠던 것, 그리고 지금까지 당신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1등 기업이 영원히 1등일 수 없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GE가 초우량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서 있는 것도 이런 남다른 벤치마킹, 그리고 신흥 시장에 착안한 역혁신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룬 성공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세상의 움직임을 주시하자. 어떤 기업이 새로 뜨고 있으며 왜 떠오르는지, 아직 발전이 뒤처진 신흥 시장에서도 배워 올 것은 없는지를 말이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지속 가능한 성공을 하려면 기업들은 자기보다 못한 기업과 시장에서도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