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자동차 匠人처럼 한땀한땀 手작업 중"

"티뷰론과 쏘나타3, 싼타페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돌고래' 몸통에서 나온 매끈한 곡선이잖아요. 요즘 차들은 어휴~, 불필요한 선(線)이 너무 많아요."

지난 12일 오후 박종서(66) 전 현대차 디자인연구소장은 경기도 고양의 개인 작업실에서 가로세로 20~30㎝ 크기 알루미늄판을 이어붙인 차체(車體)를 연마제로 문지르고 있었다. 그의 손이 속도를 더할 때마다 은백색 표면에서 광택이 살아났다.

박 전 소장은 '싼타페'와 '쏘나타3' 등 1990년대 현대차의 상징이 된 울퉁불퉁한 '근육질' 디자인을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자동차 디자인이라는 개념조차 희박하던 1979년 현대차에 입사해 '포니2'에서 '쏘나타3'까지 한국 자동차 모델의 변천사를 지켜봤다. 2004년 현대차를 떠난 후 올 2월까지 10년 동안 국민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그는 정년퇴직 후 작업실로 돌아가 수제차 모형 제작에 열중하고 있다.

박 전 소장이 만든 둥근 근육질 차체는 세계시장에서 한국 차에 대한 인식을 180도 바꿔 놓았다. "1984년쯤 시험 삼아 '돌고래' 몸통에서 선을 딴 콘셉트카 디자인을 하나 만들었는데, 이를 본 미국 딜러들이 '빨리 차를 만들어 달라'고 성화였죠." 그렇게 나온 차가 티뷰론이었다. 역동적 힘을 표현하기 위해 자연에서 디자인을 따온 것이다.

요즘 그는 작업실에 틀어박혀 실제와 똑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옛날 명차를 복원하는 작업에 매달려 있다. 차체와 1대1 크기로 목조틀을 만들고, 여기에 알루미늄판을 입혀 망치로 두드리는 손작업을 몇 달씩 이어간다. 그렇게 1958년식 '페라리250 테스타 로사'와 1938년식 '알파 로메오' 같은 전설의 이탈리아 명차가 이곳에서 '재탄생'했다. 그는 "옛날 설계도를 뒤지고, 이탈리아 장인(匠人)들에게 직접 물어가며 수제(手製) 방식을 복원하고 있다"며 "창의력은 결코 컴퓨터에서 나올 수 없고, '손과 머리'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만든 '작품'들을 2015년 고양시 향동에 문을 여는 '자동차 디자인 박물관'에 전시할 계획이다. 900평 부지도 이미 확보해뒀다. 현대자동차에조차 남아 있지 않은 '포니' 원형의 1대1 크기 엔지니어링 도면도 구했고, 1945년식 '페라리 125'의 첫 번째 구상 그림 등 200점 이상의 전시물을 모았다.

그는 국내 처음으로 영국 런던 RCA(Royal College of Art·왕립미술대학원) 자동차 과정을 졸업했다. "회사 구내식당에서 직원들 반찬 값 줄이려고 울산 공장 한쪽에 돼지를 기르던 시절이었는데도 디자이너 키울 생각을 했으니 대단했죠." 그는 부자(父子) 자동차 디자이너로도 유명하다. 아들 찬휘(36)씨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RCA를 졸업하고, 아우디 디자인팀에 근무하고 있다.

박 전 교수는 "내 박물관을 다녀간 아이들이 '자동차는 쉬운 거야, 재미있는 거야' '아, 나도 만들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면 지금 아무리 깎고 문지르고 두드리느라 손이 아파도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