財界 "보안 때문에 계열사에 맡길수밖에 없는 일도 있다"

재벌 계열사 간 내부 거래를 원칙적으로 일감 몰아주기로 간주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추진 중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우선적으로 SI(시스템통합)·광고·물류(도매)·부동산(건물관리) 등 4개 업종을 타깃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 15일자 A1면 참조

국회 관계자는 15일 "4개 업종만 별도로 명시해 규제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 수 있느냐는 질의가 나왔을 만큼 의원들의 관심이 높다"며 "법이 통과되면 공정위가 SI 등 4개 업종부터 모니터링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4개 업종이 가장 내부 거래가 많고, 대부분 수의계약으로 진행하는 관행이 만연돼 있어 일차적으로 손을 보겠다는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공정위는 4개 업종에 종사하는 재벌 회사들에 그룹 내 계열사로부터 물량을 수주받는 과정이 정당했는지 조사에 착수할 가능성이 크다. 관련 회사들이 정당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과징금을 물린다. 또 재벌 총수가 관여한 정황이 발견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억원 이하 벌금을 받게 된다.

◇공정위 "물류회사 내부거래 83%"

공정위가 2011년 주요 재벌 소속 20개 관련 업종의 내부 거래 실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글로비스(현대차) 등 물류회사들의 평균 내부 거래 비중이 83%로 가장 높았다. 매출 가운데 83%가 계열사로부터 수주받은 물량이었다는 뜻이다. 광고(69%), SI(64%)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들 4개 업종은 계열사로부터 물량을 수주받은 과정도 투명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4개 업종 내부 거래의 88%가 경쟁입찰을 거치지 않고 일대일로 계약을 체결하는 '수의계약'에 의해 발주됐다. 만일 법 통과 후에도 이 회사들이 기존의 거래 관행을 계속하면 대규모 과징금과 총수의 형사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공정위는 그간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지속적인 규제를 시도해 왔다. 지난해엔 SK그룹 계열사들의 SKC&C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를 적발해 과징금 346억원을 부과한 바 있다. 그러나 '부당성' 요건을 공정위가 입증하기 쉽지 않아 한계가 많았다. 하지만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확정되면, 내부 거래가 정당하다는 사실을 기업이 입증해야 한다. 공정위 입장에선 일이 크게 편해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공정위의 자의적인 법 해석에 따른 부작용도 우려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시행령에 구체적인 내용을 담으면서 다양한 의견 청취를 통해 우려를 불식하겠다"고 말했다.

◇"경영에 심각한 문제…한국 떠나는 업체 생길 수도"

정부나 국회 움직임에 재계는 "현실을 모르면서 너무 밀어붙이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한국의 고도성장을 이끈 것은 경쟁력 있는 대기업 집단이었고, 그 힘의 상당 부분은 수직계열화에서 나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삼성전자의 갤럭시S의 핵심 부품은 삼성전기·SDI·제일모직 등에서 충당한다.

LG전자 옵티머스G는 LG디스플레이·이노텍·화학 등에서 핵심 부품을 마련한다. 이를 무시하고 이제 와서 일감 몰아주기로 몰아붙이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다.

SI 등 4개 업종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예컨대 민감한 IT 시스템을 다루는 SI나 건설은 그룹 내 보안 문제 때문에 계열사에 일감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정부가 너무 강하게 몰아치면 공장 해외 이전을 고려하는 업체도 나올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해외에 공장을 두면 하도급 문제도 없고, 일감 몰아주기 같은 공정위 규제 이슈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난다"며 "정부가 강경하게 갈수록 국내 투자 여건은 더 척박해질지 모른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