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박 날 장사, 진열만 바꿔도 대박나요"

"생선은 사선으로 진열해야 훨씬 신선해 보여요. 홍시는 빨간 플라스틱 바구니에 그냥 담지 말고 초록색 비닐봉지를 깐 뒤 올려놓아야 매출이 쑥쑥 오르죠."

이랑주(41)씨는 한국 재래시장의 '비주얼'을 바꾸는 여인이다. "비닐봉지 색깔 하나만 바꿔도, 매대의 상품 진열 순서만 바꿔도 쪽박 날 장사가 대박으로 돌아선다"고 단언한다. 전문용어로는 '비주얼 머천다이징 디자인(VMD)'이 그가 하는 일이다. 현대, 롯데 같은 백화점에서 명품 소비욕을 자극하는 '디자인 마케팅'을 십수 년 하다가 돌연 재래시장으로 뛰어들었다. "대형 마트에 밀려 고군분투하는 재래시장 상인들에게 VMD 노하우를 알려 드리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맛있는 국밥집'이 아니라 '맛있어 보이는 국밥집'에 들어가고, '옷이 예쁜 가게'가 아니라 '옷이 예쁠 것 같은 가게'에 들어간다는 걸 일깨워 드리고 싶었어요."

올해가 8년째. 처음 혼자 하던 일을 중소기업청이 지원한 덕분에 전국 재래시장을 돌며 '컨설팅' 했다. 이씨 덕분에 '대박 난' 가게가 한둘이 아니다. 부산 진시장의 100년 된 한복집은 이씨의 끈질긴 설득으로 100년 만에 옷감의 진열을 바꾸고 나서 매출을 두 배로 올렸다. "알록달록 보색을 대비해 진열해 놓은 걸 비슷한 색상끼리 모으는 '그러데이션(gradation)' 방식으로 바꿔 드렸지요. 매장이 훨씬 고급스러워 보이는데도 '어색하다, 밋밋하다'며 못마땅해하셨는데, 1주일 뒤 다시 가보니 주변 한복집들까지 다 진열법을 바꿨더라고요(웃음)."

소비자 심리를 토대로 한 비주얼 마케팅은 백화점 시절 혹독히 훈련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매장으로 올라온 손님들이 왼쪽으로 가는지, 오른쪽으로 가는지, 직진하는지를 종일 서서 살폈지요. 대부분은 왼쪽으로 갑니다. 그래서 튀는 제품은 왼쪽에 선보이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무난한 제품을 진열하지요. 매출은 대부분 오른쪽에서 일어납니다."

쥐똥 구르고 바퀴벌레 우글대는 재래시장 '업그레이드' 노하우를 모아 지난해 '이랑주의 마음을 팝니다'라는 책으로 출간한 그녀는, 훌쩍 세계 재래시장 여행을 떠났다. 인도, 네팔, 터키를 거쳐 유럽과 남미까지 80여개 도시, 시장 150곳을 답사했다. "진열 자체가 예술이더군요. 관광객이 얼마나 많은지. 2차 가공식품, 셰프의 마켓까지 들어와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있었죠." 이씨는 전통 시장이야말로 블루오션이라고 했다. "500년 된 폴란드의 크라쿠프 중앙시장, 스페인의 보케리아 시장처럼 일반 대형 마트나 백화점에선 살 수 없는 물건들을 개발해야 합니다. 도시형 장인을 발굴해야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