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기자의 북앤수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초록은 왜 초록인가

가수 김창완(59)이 격월간 동시전문지 '동시마중'에 5편의 동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개구장이'(1979) '산할아버지'(1981) '산울림 동요왕국'(1984) 등 이미 펴낸 동요 앨범만 다섯 장이다. 새삼 '등단'이라는 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었을까. 혹 손주 볼 나이가 되어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진 걸까. 서래마을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그의 집을 찾았다. 마침 집 앞에서 자신의 스쿠터를 수리하고 있었다. 택배 청년의 오토바이 질주가 멋져 보여 뒤쫓다가 넘어졌다고 했다.

―(웃으며) '등단'이라니 새삼스럽다.

"(머리를 긁적이며) 우연이다. 그냥 친구에게 전하는 아침 인사처럼, 저녁에 마무리하는 하루 소회처럼, 여러 사람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친한 동생인 시인 박철(51)에게도 한 편 보낸 적이 있다. '할아버지 불알'이라는 시였는데, 철이가 '쓴 사람도 시원하고, 읽은 사람도 시원하고 보는 사람도 시원하다'고 답을 보냈다. 그 친구가 동시 전문지에 일을 벌인 거지. 쓰다 보니 꽤 썼더라고. 두 달 동안 한 70편 되나?"

'할아버지 불알'은 단 4행이다. '할아버지 참 바보 같다/ 불알이 다 보이는데/ 쭈그리고 앉아서 발톱만 깎는다/ 시커먼 불알'. 휴대폰을 뒤적거리더니, 또 한 편을 찾아 낭독한다. 이번에는 단 2행.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로 이렇게 읽었다. "제목. 과거는 흘러갔다. 지은이 김창완. 세상에 아무리 먼 것도/ 어제만큼 먼 것은 없다." 엊그제 통닭집 옆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고3 학생들에게 응원차 선물한 시라고 했다.

―이제 손주 기다리는 할아버지 나이가 된 걸까.

"(껄껄 웃다가 갑자기 진지해지며) 한 3, 4년 됐나? 어느 때부턴가 점점 세상을 모르겠더라. 내 가슴에 오로지 하나의 질문만 있다. '초록은 왜 초록인가'. 내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모든 것에 회의를 품게 만드는 가장 간단한 질문이다. 그런데 답을 못 찾았다. 한 발자국도 못 갔다. 한 발자국도. 내가 쓴 동시의 발로도 이것이다."

―그런 의심과 질문은 어쩌면 철학과 종교의 영역일 텐데.

"과학의 영역이기도 하다. 이 화두를 쥐고 몇 년 꾸준히 노력하면, 뭔가 좀 알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전혀다. 신록의 산에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 초록이 초록이 아니고 빨강이라면 어떨까. 그러면서 질문의 깊이를 좀 더 깊게 가져가봤겠지. 그런데 정말 어렵다(웃음)."

―(웃으며) 자칫 개똥철학자로 오해될지 모른다는 걱정은 없나.

"그러니까 다른 사람하고는 절대 이런 얘기 안 한다(웃음). 그냥 혼자만의 생각이다. 그냥 내가 나에게 묻는다. 이 질문을 품고 사물을 보는가, 어떤 사건에 대한 내 이해는 과연 이 질문에 비춰봤을 때 올바른가. 검증 필터 역할을 하는 거지."

―다시, 왜 동시를 썼느냐고 묻는다면.

"'초록은 왜 초록인가'를 다른 질문으로 바꾸는 거겠지. 그래서 '장미'라는 동시로도, '할아버지 불알'로도, '과거는 흘러갔다'로도 나오는 거다."

그의 침대 머리맡에는 중국 작가 위화의 산문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인문학자 조중걸의 '플라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지난해 동인상 수상작인 정영문의 '어떤 작위의 세계'가 계통 없이 섞여 있었다. 시인 장석남의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와 양진건의 '귀한 매혹'도 보였다. "워낙 게을러서 긴 글은 잘 못 읽는다. 독주 마시듯이 짧은 글로 마음이 흔들렸으면 하는 심정"으로 시집을 읽는다고 했다. 그가 문득 그 유명한 바쇼와 모리다케의 하이쿠를 읊었다.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과 '꽃잎 하나가 떨어지네/ 아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

―당신에게 책 읽기는.

"소통이다. 이런 하이쿠 한 방 띵 맞으면 두 시간 정도 얼얼하지 않나. 나는 한 10년 넘게 수학책을 소설책 보듯 읽었다. 너무 좋아 벌거벗고 뛰어나가 유레카(바로 이거야)라고 외친 아르키메데스 봐라. 수학도 결국 사람을 이해하게 해 주는 것, 이 사실을 느끼는 순간 행복하다. 물리학 책 읽는 이유도 그래서다. 단, 자기계발서는 안 읽는다. 계발인지, 개발인지, 진짜로 너무하다. 금방 수학 천재 될 것처럼 만드는 책은 안 된다. 이런 '사기'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김창완은 남들보다 2년 일찍 초등학교를 들어갔다. 십리 길을 걸어다녔던, 김포 오정초등학교. "그냥, 고집이 세서" 일찍 들어갔다. 그때는 울면 학교도 보내줬고, 울면 책상도 줬고, 울면 2학년 진급도 시키던 시절. 하지만 온통 형과 누나들 사이에서, 항상 두 살 어린 소년 김창완은 외로웠다. 말귀 못 알아듣는 일이 많았고, 고교 1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급우들과 일대일 소통이 가능했다. 환갑이 가까워도 여전한 철없음은 어쩌면 그 외로움이 뿌리가 아니었을까.

'초록은 왜 초록일까'에 이어 '김창완은 왜 김창완일까'를 물으려는 순간, 그가 최근에 한 젊은 여성 연출가와 악수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손을 잡았는데 너무 탱탱하더라는 것. 내게는 감당 안 되는 젊음이라는 느낌, 부담스럽다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만지면 뱀 껍질 같고, 가죽하고 살이 분리된 것 같지만, 노인 손을 만질 때가 정말 좋고 편하다 했다. 철없는 노인과 멋쟁이 소년 사이에서, 김창완이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