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풍에 돛 단 줄 알았는데… 풍력발전 평가 '바람'

독일 북부 해안에서 북서쪽으로 45㎞ 떨어진 북해(北海) 한복판엔 지름 100m가 넘는 거대한 바람개비가 24시간 돌고 있다. 이 지역 해상에는 평소 초속 0~15m의 남서풍이 지속적으로 분다.'알파 벤투스(Alpha Ventus)'라는 이 해상 풍력발전 단지에는 90m 높이 탑에 거대한 바람개비 12개가 1㎞ 간격으로 설치돼 있다.

풍력발전기 1대가 생산하는 전기는 약 5㎿로, 전체 전기 생산량은 60㎿에 이른다. 4인 가족 기준으로 14만 가구의 소도시에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알파 벤투스는 과학적 사전 조사와 실시간 분석을 통해 최고의 풍력발전소로 자리 잡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전기 생산량 최대화할 '바람 길' 찾기

풍력발전 단지는 대부분 철저한 사전 입지 조사를 거쳐 선택된다. 연중 부는 바람 방향과 평균 풍속을 고려해서 설계한다. 하지만 상당수 발전소는 원래 목표한 발전량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안전 표준 인증 회사 유엘 데비(UL-DEWI) 관계자는 "바람이 계속 부는 망망대해라도 풍력발전소를 설치하는 방법에 따라 생산되는 전기량 차이가 크다"며 "풍력발전 단지마다 전기를 최대로 생산할 수 있도록 최적의 바람을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알파 벤투스 해상 풍력 단지도 남서쪽에서 부는 바람이 85~95m 높이에서 초속 12~13m로 불 때 가장 많은 전기를 생산한다.

각각의 풍력발전기가 전기를 최대한 생산하려면 가급적 다른 발전기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바람이 앞쪽 풍력발전기의 바람개비를 통과하면서 공기의 불규칙한 흐름인 난기류(亂氣流)가 발생하고 이 때문에 뒤쪽 발전기들이 충분한 효율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쉽다.

◇국내선 전남 영광이 최적 해상 풍력 단지로 꼽혀

한국에서도 풍력발전소 발전량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풍력산업협회에 따르면 현재 제주도와 대관령 등 전국 풍력발전 단지 42곳에서 풍력발전기 295대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는 산과 섬이 많은 지형과 북서풍이 주로 부는 기후 특성 때문에 풍력 단지 선정에 어려움이 많다.

2011년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실증 단지 가운데 해상 풍력 분야 사업지로 최종 지정된 전남 영광 하사리 지역은 과학적 사전 분석과 조사를 통해 최적 입지로 선정된 사례다.

과학자들의 분석 결과 영광 앞바다는 연평균 북쪽과 북서쪽에서 바람이 많이 부는 특성이 있고, 이 가운데 북풍을 풍력에 활용할 경우 발전량이 최대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장문석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풍력발전연구센터장은 "풍력발전을 하기에 좋은 바람이 잘 부는 유럽과 비교해 한국은 대부분 초속 7~7.5m 안팎의 바람이 분다"며 "1년간 면밀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 전기를 최대한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최적 풍력발전 단지 터를 찾으려고 국내 바람 길의 현황을 살펴볼 수 있는 '국가 바람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이 지도는 한반도 육지와 바다를 가로 세로 각각 1㎞ 간격으로 나눠 1시간마다 바뀐 풍속과 풍향을 알려준다.

◇풍력발전 신뢰성 높이려면 정확한 발전량 측정해야

상당수 풍력발전소는 철저한 사전 평가가 미흡한 나머지 지금도 초기 설계된 발전 용량보다 적은 전기를 생산한다.

풍력발전 업계 관계자는 "세계 곳곳 풍력발전소가 좋은 위치에 효율이 좋은 발전기를 설치했지만 목표 발전량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최적화에 성공한 풍력 단지도 실제 발전량은 처음 약속한 발전 용량의 92% 수준"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풍력발전의 신뢰성에 흠집을 낼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각국이 풍력발전소별로 정확한 발전량을 측정하기 위해 과학적 검증에 나서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문석 센터장은 "풍력발전 산업이 발달한 유럽은 나라마다 각종 기술을 활용해 풍력 단지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려 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유럽의 분석 기술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