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행복해야 관람객도 만족… 철창부터 치웠죠"

18일 이원효(60) 서울대공원장이 퇴임한다. 2003년 4월 서울대공원장으로 임명된 지 10년 만이다. 2002년 환경운동연합은 서울대공원의 사육 실태를 조사한 보고서 '슬픈동물원'을 발간했다. 수풀 대신 콘크리트 바닥에서 생활하다 발가락을 잃은 고릴라, 스트레스로 깃털이 모두 빠진 타조 등 보고서는 당시 서울대공원의 열악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었다. 서울시는 대공원장을 공개 모집했고, 에버랜드·롯데월드에 근무하며 전문성을 인정받은 이 원장이 선발됐다.

그가 취임한 10년 새 '동물 강산'이 변했다. 시멘트 바닥을 걷어낸 자리엔 흙과 나무, 각 동물 특성에 맞는 시설물이 들어섰다. 사막 동물 흰오릭스와 습지 동물 시타퉁가가 같이 뒤엉켜 살던 전시장은 유인원관, 열대조류관 등 동물 생태에 맞게 재편됐다. 2009년과 2010년 서울시 전체 공원 시민 고객 만족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17일 대공원에서 만난 이원효 원장은 "관람객이 아닌 동물들 입장에서 대공원을 다시 봤다"며 "동물들이 행복해지면 동물들의 반응도 다양해지고, 결국 관람객도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취임 이듬해인 2004년 '동물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우선 철창을 걷어냈다. 높은 곳을 좋아하는 침팬지를 위해 24m 높이의 '정글타워'를 설치하고, 바다악어가 산란할 수 있도록 모래를 깔았다. 2007년 전시장 바닥의 오염된 흙을 전면 교체하기도 했다.

동물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은 관람객의 참여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사자 우리 천장에 원형 레일을 설치하고, 관람객들이 전시장 밖에 설치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레일에 매달린 고깃덩어리도 함께 돌아가도록 했다. 온종일 잠만 자는 통에 관람객들에게 외면받던 사자가 먹이를 낚아채기 위해 열심히 도약했다.

이 원장은 행복한 동물원을 만들기 위해선 사육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임 당시만 해도 동물 밥 주고 배설물 치우는 게 사육사 일의 전부로 여겨졌다"고 했다. 서울대공원은 국내 최초로 사육사들을 미국, 영국, 독일 등의 선진 동물원에 연수를 보냈다.

환경이 개선되자 희귀 동물들 번식도 활발해졌다. 번식에 실패하던 노랑부리저어새와 왕관비둘기가 지난해 처음 출산에 성공했다. 사바나원숭이 두 마리도 대공원 새 식구가 됐다. 지리산에 방사된 반달곰의 절반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이 원장은 오는 6월 방사할 예정인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제돌이 방사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며 결과적으로 동물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각에서) 동물원이 '동물을 억압하는 곳'으로 여겨지는 것은 안타깝다"고 했다. 동물원을 통해 아이들이 동물들을 접하고 자연의 소중함을 익혀야 다시 동물과 환경을 사랑하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1년 죽은 수컷 로랜드고릴라 '고리롱'에 대한 아쉬움도 표했다. 고리롱은 창경원 시절부터 열악한 콘크리트 바닥에서 생활하며 발가락을 절단해야 했다. 그는 "고리롱은 '슬픈동물원'에서 고통받은 동물의 상징이다. 지난해 12월 들여온 '우지지(영국에서 온 수컷 고릴라)'는 새로운 생태동물원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제 대공원을 떠나지만 평생 행복한 동물원의 옹호자로 남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