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4.23 03:23 | 수정 : 2013.04.23 10:34

[유통구조 개혁 나선 소진세 롯데슈퍼 사장]
지역 농·어민 생산 식품, 직접 납품 받아 판매
유통 단계 2단계로 단순화… 생산자·소비자 모두 윈윈

"수퍼마켓과 가장 잘 맞는 게 '로컬푸드'예요. 매출의 40~50%가 채소나 계란같이 신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식품이기 때문입니다."

소진세(63) 롯데슈퍼 사장은 22일 로컬푸드형 점포를 현재 5개에서 연말까지 100개로 늘리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3대 유통 구조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로컬푸드형 점포란 가까운 농가나 어민이 생산한 식품을 직접 납품받아 파는 점포를 말한다. 유통 구조를 단순화하면서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모델로 최근 유통업계의 화두(話頭)다.

소 사장은 "로컬푸드는 생산자나 소비자에게 모두 이익이 되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기존에는 농민이 수확한 채소가 '산지 수집상→도매시장→공급업체'를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다단계 구조였다면, 로컬푸드는 '농민→소비자'의 2단계 구조다. 중간 과정이 없으므로 비용과 마진이 그만큼 줄어든다.

소진세 롯데슈퍼 사장이 22일 서울 성동구 행당동 매장에서 얼갈이 배추의 품질을 살펴보고 있다
소진세 롯데슈퍼 사장이 22일 서울 성동구 행당동 매장에서 얼갈이 배추의 품질을 살펴보고 있다. /성형주 기자

"줄어든 만큼 생산자는 비싸게 팔고, 소비자는 싸게 삽니다. 또 채소가 수확돼 소비자의 손까지 가는 데 기존 방식으로는 평균 20시간이 걸리지만 로컬푸드형 유통에서는 5시간만 걸려요."

예를 들어 기존 방식에서는 농민이 시금치 한 단을 800원에 넘기면 여러 과정을 거쳐 소비자는 1590원에 샀다. 그러나 로컬푸드형 점포에서는 농민은 950원에 팔고, 소비자는 1250원에 산다. 말 그대로 '윈·윈(win·win)'이다.

롯데슈퍼는 식품을 공급받는 전용 혹은 계약 농장을 현재 50개에서 연말까지 97개로 늘릴 계획이다. 역시 유통 단계를 축소하는 것이다. 특히 전용 양계장을 전국 9곳에 만들어 판매하는 계란의 100%를 전용 농장에서 공급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농협이나 생산자조합 같은 농어민 단체와의 직거래도 늘리기로 했다. 작년 360억원 규모였던 직거래 규모를 올해는 470억원으로 늘릴 예정이다.

소 사장은 "농장이나 농어민 단체를 돕기 위해 120억원의 '상생 자금'을 투입한다"고 말했다. 계약을 한 농장이나 농어민 단체에 비료, 농기구 운영 비용, 인건비 같은 비용을 무이자로 미리 빌려주고 나중에 수확물을 판매하면서 계산하는 것이다. 소 사장은 "우리는 산지를 확보하고 농어민은 자금 부담을 덜고 판로를 확보한다"고 말했다.

롯데슈퍼가 유통 구조 단순화에 나선 것은 최근 정치·사회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다. "동반 성장이나 상생은 이제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는 새로 점포 내기도 힘들고 의무 휴무도 있어서 이익이 줄어들었어요."

36년을 계속 롯데에서 일한 말 그대로 '유통맨'인 그도 "최근이 제일 힘들었다"고 말했다. 소 사장은 대구고·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1977년 롯데에 입사했고, 1999년 롯데백화점 본점 점장일 때는 국내 최초로 단일 점포 매출 1조원을 넘긴 기록을 갖고 있다.

그는 "농민에게도 도움이 돼 상생 분위기에도 맞고 수퍼마켓도 사는 길은 유통 구조 단순화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도 로컬푸드형 점포를 처음 낸 것은 모두 수퍼마켓들이다. 수퍼마켓은 전국 어느 지역에나 있고 주택가 근처에 붙어 있기 때문에 생산자가 공급하기도 쉽고 소비자가 조금씩 사서 쓰기에도 좋다. 소 사장은 "수퍼마켓은 모두 물건을 우리가 사서 직접 공급하고 판다는 점에서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와 전혀 다른 형태의 유통업"이라며 "그 자체의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작년 9월 롯데슈퍼는 중국에도 진출했다. 소 사장은 "베이징(北京)에 현재 6개 점포가 있는데 잘 된다"며 "올해 말까지 70~80개를 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의 대표도 맡고 있는 그는 "유통 구조 단순화 등을 통해 편의점 가맹점주에게도 이익을 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로컬푸드(local food)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그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것이다. 원래는 식품의 신선도를 높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으며, 유통 단계가 줄면서 자연스럽게 농민과 소비자에게도 이익이 돌아가는 효과를 갖고 있다.

 

조선일보 조선닷컴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