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현의 모던 타임스] [47] 갓 쓰고 양복 입은 서광범, 머릿속 생각도 바뀌었을까?

때론 한 장의 사진이 역사를 함축한다. 한복과 양복 차림의 두 사람은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1851~1897)과 서광범(1859~ 1897)이다. 자세히 보면 단추가 4개 달린 더블브레스트 슈트에 몸에 딱 붙는 바지 차림이 서광범이다. 조끼에 걸린 금속 줄로 보아 안주머니에 회중시계도 들어 있다. 언제 찍은 사진일까? 1883년 초대 미국 공사 푸트(Foote)가 부임한 데 대한 답례 사절인 보빙사(報聘使)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서광범이 미국에 갔다 온 것이 1884년 6월이고 그해 12월 갑신정변 실패 직후 일본으로 망명했으니 그 사이일 테고, 양복의 두툼한 질감과 무릎까지 오는 롱부츠로 미루어 바깥바람이 쌀쌀한 11월경에 찍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 최초로 양복을 입은 이가 바로 그다. 겉모습이 바뀌면 머릿속 생각도 바뀐다. 그에게 청나라는 더 이상 상국(上國)이 아니었다. 조선의 주권을 부당하게 간섭하는 침략자일 뿐이었다. 양복 착용은 미국을 약자를 보호하는 수호천사로 본 그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런데 뭔가 어색하다. 머리에 사대부들이 평상시 갓 대신 쓰던 정자관(程子冠)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25세 새파란 청춘인 그의 머릿속은 혼돈 그 자체였다. 어깨너머로 배운 장기처럼 채 1년도 못 되는 주마간산(走馬看山)격 시찰로는 미국의 속내를 꿰뚫기엔 역부족이었다.

제3국의 부당한 간섭과 침략에 대한 중재를 못 박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제1조는 꾸밈말이었고, 보빙사를 맞아 아서(Arthur) 대통령이 한 "상호 우호관계와 성실한 호혜적인 교역을 통해 이익을 같이 나누고자 한다"는 말이 본심이었다. 그러나 수출 가능한 산물(産物)이 쌀과 소가죽밖에 없었던 조선은 단물 빠진 추잉 껌일 뿐이었다. 청나라를 몰아내는 데 힘을 보태달라는 간청을 미국이 거절하자 일본이 내민 손을 덜컥 잡고 만 그와 갑신정변의 주역들에게는 원조 친일파라는 멍에가 씌워졌다. 그러나 갑신정변 실패 후 10년간 우리의 독립을 막은 청나라처럼 중국이 대국굴기(大國崛起·대국으로 우뚝 일어섬)를 외치며 패권 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는 오늘. 그들은 최초의 반청(反淸) 독립운동가로 다시 읽힐 수도 있지 않을까? 변화하는 현재에 따라 항상 새롭게 쓰이는 것이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