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사병으로 시작해 오바마·원자바오 식사대접까지

"코스 요리에 적합한 외국인들을 위한 한식 메뉴를 2010년부터 1000가지 넘게 개발했어요. 매달 새 메뉴를 개발하는데 메뉴 수가 많이 늘지는 않아요. 현장에서 음식을 내보고 나면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점 때문에 30%는 폐기하거든요."

서울 중구에 있는 롯데호텔서울의 한식당 '무궁화'의 천덕상(48) 주방장은 국내 특급 호텔 한식당에 처음으로 서양스타일의 코스 요리를 만들어 낸 사람이다. 음식을 차례로 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애피타이저→메인 디시→디저트'로 이어지는 제대로 된 코스다. 주방도 '애피타이저팀', '메인 디시팀', '디저트팀' 등 서양식으로 일한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무궁화는 2010년 이후 매년 60%씩 매출이 성장해왔다. 외국인 손님도 10% 미만에서 55%까지 끌어올렸다.

천 주방장은 한식을 코스화하고 외국인의 입맛을 잡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궁중 요리'에서 찾았다. "외국인들은 맵고 짠맛에 어느 정도 거부감이 있습니다. 왕이 먹는 음식은 매운맛이나 향이 강하지 않아 이를 참고하기로 했죠."

외국 유명 셰프들이 그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같은 호텔 프렌치 레스토랑의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Gagnaire)였다. 가니에르는 그에게 "청국장의 냄새가 외국인에게는 역할 수 있으니 '백태(흰콩)'를 써 냄새를 줄이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

전 세계 유명 식당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미국 뉴욕의 유명 일식당 '메구'에서는 세라믹 판에 생선을 타지 않게 굽는 법을 배웠다. 천 주방장은 "우리는 보통 숯불에 생선을 굽는데 외국인들은 그걸 생선이 타 몸에 안 좋다고 생각했다"라며 "그 식당과 같은 세라믹 판을 사와 우리나라 질그릇 형태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입맛을 잘 안다는 점 때문에 천 주방장은 외국 정상들의 방한 시 종종 한식을 대접한다. 버락 오바마(Obama) 미(美)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는 청와대에 들어가 파인애플과 양파로 만든 양념에 재운 등심구이를 만들었다. 원자바오(溫家寶) 전(前) 중국 총리가 방한했을 때는 삼계죽을 냈다. 그는 "취향이 제각각인 외국인 고위층 손님들에게는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 신선로를 대접하면 실패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식에 서양식 스타일을 도입했지만 천 주방장은 해외 유학 경험이 없는 '국내파'다. 천 주방장은 "입사 전 요리 경력은 군대 취사병 시절이 전부"라며 "어릴 적 기억도 하숙집을 했던 어머니가 하숙생들을 위해 밥을 하는 걸 어깨너머로 본 정도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군에서 요리에 재미를 붙인 그는 제대 후 1988년 롯데호텔에 입사했고, 청소부터 시작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조리기능장도 11년 전에야 땄다. 최근엔 한식을 발전시킨 공으로 문화부장관과 농림부장관상, 국무총리상까지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