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4.25 04:00

제주 100만평 차밭 서광다원

오설록 찻잎

강남 갔다 돌아온 제비들이 재잘거리며 바쁘게 차밭 위를 날아다녔다. 봄비가 내려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穀雨)를 하루 앞둔 지난 19일, 제주도 서귀포 서광다원은 여린 초록빛 찻잎이 한창 올라오고 있었다. 서광다원을 관리하는 아모레퍼시픽 계열사 장원 김용환(41) 부장은 “지난 9일 올 햇차를 처음 수확했다”면서 “오는 29일부터 본격적인 우전차(雨前茶) 수확이 시작된다”고 했다.

올 햇차 4월 말 수확

전국적으로 햇차 수확이 시작됐다. 햇차는 이름이 많다. 우전차, 세작차(細雀茶), 첫물차라고 부른다. 우전차는 곡우 즈음 수확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세작차는 찻잎이 참새(雀)의 혀처럼 작고 가늘다(細)는 뜻이다. 첫물차는 그해 처음 수확해 덖은 차라는 말이다. 첫물차는 4월 말에서 5월 초, 두물차는 6월 말에서 7월 초 채엽한다. 세물차는 8월 초 수확할 수 있지만, 내년에 나올 찻잎이 여기서 자라나기 때문에 따지 않고 놔둔다. 네물차는 9월 말에서 10월 초 수확하는데, 품질이 떨어져 현미와 섞어 현미녹차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 이른 봄 수확하는 우전차가 높이 평가받는 건 물론 맛이 더 좋기 때문이다. 김용환 부장은 "차 특유의 감칠맛은 아미노산에서 나온다"며 "첫물차는 아미노산 함량이 3~4%인 반면 여름차(두물·세물차)는 1.3~2%, 가을차(네물차)는 1% 미만으로 떨어진다"고 했다.

차 재배에 이상적 조건 갖춘 제주도

차나무는 연평균 14도 이상으로 따뜻하고 일조량이 많으면서도 그늘이 있어야 잘 자란다. 많은 물을 필요로 하지만 뿌리에 물에 고여 있으면 쉽게 썩는다. 일본 후지산이나 중국 황산처럼 습기가 많고 서늘한 깊은 산속 계곡이나 안개가 끼는 지역이 차밭으로 선호된다. 그래서 전남 보성이나 경남 하동에선 차밭을 물이 잘 빠지는 산비탈에 조성했다. 제주도는 화산 토양으로 유기물 함량이 높아 비옥하면서도 흙 사이 틈이 많아 물이 잘 빠진다. 그래서 서광다원을 포함해 아모레퍼시픽이 제주도에 가지고 있는 차밭 세 곳은 모두 평지에 있어도 되는 것이다.

제주도 서귀포 서광다원 차밭
따스한 봄바람에 여린 찻잎이 살랑거린다. 햇차 수확을 앞둔 제주도 서귀포 서광다원 차밭이다. / 허재성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고(故)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회장이 이곳에 차밭을 조성할 때만 해도 반대가 엄청났다. 30년 전만 해도 서광다원이 있는 땅을 제주 사람들은 '머들'(돌무지)이라고 불렀다. 1983년 개간할 때만 해도 가시덤불밖에 없는 돌밭이었다. 길이 끊겨 기계 장비를 가져올 수 없어 인력으로 돌과 잡목을 걷어냈다. 흙이 물처럼 땅으로 스며들어 여러 번 흙을 실어다 부었다. 그런 노력 끝에 이상적인 차밭을 만들 수 있었다.

차 마시는 법

지난달 개관한 차문화 체험공간 오설록 티스톤(Tea Stone) 박유진(29) 강사에게 차 마시는 법을 배워봤다. "찻물은 70~80도가 알맞습니다. 찻주전자를 손으로 감쌌을 때 따뜻한 정도가 좋아요. 찻잎은 1인당 2g, 2티스푼이면 알맞습니다. 차를 3~4번 우릴 수 있어요. 1분~1분 30초 우립니다."

현재 대규모 차밭에는 대개 야부기다 차나무가 심겨 있다. 이 차나무에서 나온 찻잎으로 생산한 차는 뜨거운 물에 우리면 떫은맛이 너무 강하다. 그래서 미지근한 물을 사용한다. 그러나 초의 선사로부터 전해지는 한국차 계보를 이은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소장은 "원래 한국 전통차는 펄펄 끓는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신다"고 말한다.

손님을 대접할 때는 이렇게 한다. "자신의 잔은 오른쪽에, 손님 잔은 왼쪽에 놓습니다. 자기 잔을 '주인잔', 손님에게 올리는 잔을 '어른잔'이라고도 합니다. 우선 어른잔에 3분의 1 정도 따릅니다. 다음은 주인잔에 3분의 1 따릅니다. 다시 주인잔에 차를 따라서 채우고, 마지막 남은 진액을 어른잔에 따릅니다. 찻물방울이 2초 간격으로 똑똑 떨어지면 다 나온 겁니다."

차향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풋풋하면서도 구수한 향이 올라온다. "길고 깊게 2번 정도 호흡하세요. 아로마 세러피와 힐링 효과가 날 겁니다." 향만 맡아도 좋은 것, 그것이 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차 한 모금을 천천히 입안에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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