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잘하는 의사 혹은 환자를 치료하는 가수? 본업이 뭐냐는 질문 같은 건 그에겐 그저 촌스러운 얘기일 뿐이다. 의사와 가수라는 결코 만만치 않은 두 가지 역할을 완벽히 소화하고 있는 이 남자. 치과의사 백승엽, 그리고 밴드 ‘이빨스’의 보컬리스트 리안에 대해.
안녕하세요, 저는 치과의사들로 구성된 펑크록 밴드 ‘이빨스’에서 리더 겸 보컬을 맡고 있는 리안입니다. 본명은 백승엽. 1999년부터 개인치과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빨스 이빨스는 2005년에 결성됐습니다. 총 세 장의 음반을 발매했죠. 음반에 수록된 곡은 모두 자작곡이고요. ‘이빨쟁이’, ‘후라이드치킨’ 등 발표된 곡만 20곡이 넘습니다. 2010년부터는 솔로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이빨스가 펑크록 같은 하드한 음악을 추구한다면 솔로 가수 리안은 발라드 같은 보다 대중적인 음악으로 팬들을 만나고 있죠.
아직 저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가수이지만 언젠가는 싸이처럼 월드스타가 될 겁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문화부장관이 되는 것, 그게 제 목표예요(웃음).
중학교 3학년 처음 음악을 접하게 된 건 중학생 때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이 어려워져 방황하던 중 3 때 친구를 따라 밴드연습실에 놀러 갔다 그만 거기에 푹 빠지게 됐어요. 당시 한 줄기 빛을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당시 상황을 비관하기도 했는데 음악으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셈이죠. 그렇게 음악을 시작했고, 그 후로 저는 단 한 번도 제 자신이 뮤지션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치대생 VS 가수지망생 당연히 음대에 진학하고 싶었죠. 그런데 담임 선생님이 치대에 가라고 설득하시는 바람에…. 작곡가 길옥윤 선생도 서울대 치대 출신이라는 얘기에 솔깃해졌어요. 막연히 서울대 치대에 가면 음악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죠. 근데 막상 가보니 분위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당시 제 헤어스타일이 장발이었는데, 교수님에게 불려가 머리칼을 잘린 적도 있어요. 고등학생 때도 당하지 않았던 일인데요(웃음). 그만큼 당시 학과 분위기는 보수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음악을 포기할 수 는 없었죠. 대학가요제 같은 경연대회에도 출전하고, 데모곡을 만들어 기획사를 찾아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기획사에서 돌아온 답은 “학교 그만 두고 음악에 전념할 수 있니?” 하는 물음이었어요. 치대생이라는 타이틀이 저를 포장하는 데는 그럴듯할 수 있지만 실제로 활동을 하는 데에는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죠. 하지만 학교를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어요. 특별한 이유에서라기보다는 여태껏 몇 년간 공부한 게 아깝더라고요.
학과 공부 후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차례로 마쳤죠. 군대에도 다녀오고요. 그러다보니 서른이 훌쩍 넘었고 기획사에서는 나이가 많다며 저를 받아주지 않았죠. 그렇게 데뷔가 좌절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갈까도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중에도 곡을 만드는 일은 멈추지 않았죠.
3명의 이빨쟁이 1993년에 의사 면허를 따고, 1999년에 개원을 했습니다. 의사로 일하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고, 어느 순간 굳이 기획사를 거치지 않아도 음악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어요. 2005년, 부리나케 멤버를 물색해 팀을 만들었죠. 4명의 치과의사가 모여 ‘이빨스’를 결성했습니다. 초창기에는 정신과 의사 표진인 씨가 객원으로 참여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멤버가 3명이에요. 기타 치는 김재홍 씨는 대학동기, 드럼 치는 홍윤기 씨는 대학선배죠. 일주일에 한 번씩 저녁에 모여 연습을 하고, 단독 콘서트나 조인트 공연 무대에 오르는 등 나름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펑크록을 지향하는 이빨스지만 작년부터는 조금 방향을 바꿔보려 하고 있어요. ‘뽕짝삘 짬뽕락 밴드’라고나 할까요. ‘뽕짝’ 느낌이 물씬 나는 곡도 몇 곡 작곡해 두었습니다. 음악적 편식은 조금도 하고 싶지 않아요. 다양한 시도 자체가 곧 우리 밴드의 색깔이라 할 수 있죠.
원장 나오라 그래! 뮤지션, 그리고 치과의사로서의 생활을 병행하는 것은 행복이에요. 의료란 정해진 답이 있는 일이죠. 100%를 다 하면 분명 답이 나오니까 자기만족을 느낄 수 있는 일이에요. 반면 음악은 끝이 없어요. 늘 부족하고 도전해야 하니까. 그러니 두 가지 일은 상호보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밤에 창작의 고통으로 들끓었던 머리와 가슴이 낮에 누군가를 치료해내는 순간 편안해지기도 하죠. 앞으로도 가능한 한 두 가지 일을 병행할 생각이에요. 그러다 혹 문화부장관이 되는 순간 병원 일은 그만둬야겠지만(웃음).
물론 억울한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치과의사라는 타이틀 때문에 제가 하는 음악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아무리 열정을 담아 곡을 만들어도 그 가치는 평가절하되곤 하죠. 병원홍보를 하려고 튀는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어요. 그러나 별수 없죠. 계속 노력하다보면 저의 진정성을 알아주리라 생각해요. 저와 같은 활동을 하고자 하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선례를 남기고 싶어요. 환자들이요? 제 외모가 범상치 않으니 간혹 어르신들은 저를 보고는 ‘원장 나오라 그래!’하며 호통을 치시기도 해요. 근데 대부분의 환자들은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병원에서 제 음악을 즐겨 틀거든요. 우리 밴드 활동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관심 가져주시는 분들도 제법 계세요. 감사하죠.
시간이 부족해 요새는 시간이 무척 아까워요. 매 순간을 얼마나 쪼개고 쪼개는지 몰라요. 지난주에는 두 번째 솔로 정규 음반에 수록될 12곡 중 6곡의 녹음과 마스터링을 끝냈습니다. 음반은 올 연말쯤 출시될 거예요. 음악과는 별개로, 지난겨울부터는 단편영화도 한 편 찍고 있고 뮤지컬 극본도 쓰고 있어요. 시화집도 구상 중이죠. 지난 1년간 70편 정도 시를 썼는데, 시 쓰고 그림 그리는 일이 재미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는 클래식 작곡에도 도전하고 싶습니다.
이 많은 일을 어떻게 다 하느냐고요? 그냥 낮에도 짬짬이 구상하면서 열심히 하는 거죠. 특별한 목표 같은 걸 정해놓고 사는 타입은 아니에요. 하고 싶은 것, 그리고 내가 아니면 누가 하랴 싶은 것들을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 거예요. 지금처럼 다양한 일을 죽을 때까지 계속하며 살고 싶어요.
인생의 키워드 제 삶의 키워드? 그건 바로 열정이에요. 정말 좋아하는 말이에요. 뭐든 열정이 사라지면 노동이 되고 마는 것 같아요. 숨 쉬는 것마저 힘들어지죠. 때론 저도 지칠 때가 있거든요. 그러나 한 번 멈추면 다시 시작하기가 그만큼 힘들 것 같아 마음을 다잡죠. 계속 채찍질하는 거예요. 채찍질로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나갈 수 있도록 다지는 것.
이런 제 에너지의 원천은 아내와 딸이에요. 화목한 가정의 에너지가 저를 계속해서 도전하게 만들죠. 음악 역시 제게는 그런 존재예요.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일. 매사에 에너지를 쏟게 하는 일. 다른 분들도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으시면 좋겠습니다. 나이 들어도 못할 일은 없죠. 열정과 노력만 있다면요.
After Interview
만 5세 때 동요를 작곡했고 대학에서는 합창단을 만들어 지휘자로 활약했다고 한다. 대학가요제 2차 예선과 TV 프로그램 ‘슈스케1’, ‘톱밴드1’ 2차 예선에서 고배를 마신 경험도 있다고. 지금은 밴드 ‘이빨스’의 보컬로 활동하며 ‘이빨쟁이’와 ‘키스하고 싶을 땐 이빨을 닦아’ 같은 곡을 부른다.
이쯤 되면 그를 ‘괴짜 치과의사’ 정도로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뮤지션 리안에 대한 엄청난 실례다. 말하자면 그는 프로니까. “처음 음악을 만난 중3 이후로 나는 단 한 번도 뮤지션이 아닌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그는 ‘뮤지션과 의사 중 한 가지만을 택해야 한다면?’이라는 다소 유치한 질문에 망설임 없이 “뮤지션”이라고 답했다. “뮤지션을 택하겠다. 나는 의사이기 이전에 뮤지션이니까.”
뮤지션 리안이 궁금하다면 그의 음악을 들어볼 것을 권한다. 객석에서 라이브로 듣는다면 더욱 좋겠다. 공연 스케줄은 ‘초절정 미성 작렬 리안 우주 유일 팬카페(cafe.naver.com/leeaan)’에서 확인할 수 있다.
리안(백승엽/46)은 서울 중랑구에서 개인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 치과병원, 인제대 서울백병원 외래교수이기도 하다. 2005년부터는 치과의사밴드 ‘이빨스’의 리더 겸 보컬로 활동하고 있다. ‘이빨쟁이’, ‘한달에 한번, 루씨’ 등의 곡이 수록된 세 장의 밴드 음반과 두 장의 솔로 음반을 발매했다. 현재 콘서트를 비롯한 각종 조인트 무대에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