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패드가 '반짝' 휴대폰을 빛내는 이 남자

"1990년대 휴대폰 창에 빛을 넣어준 부품은 EL(electroluminescence·전계발광)소자입니다. 당시(교수였던) 제가 대학 연구실에서 만든 EL이 시장 1위 회사 것보다 40%나 밝았어요. 그대로 묵히기엔 아까웠죠."

신동혁(申東赫·55) ELK 사장은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후 미 코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동국대 물리학과 교수로 부임해 EL소자·액정디스플레이(LCD) 분야에서 7년간 40여편의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국내외 학회 발표도 70차례나 했다. 그는 EL소자에 빛의 밝기를 강하게 해주는 분말 가루를 찾아내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매년 억대 연구비를 받으면서 연구자로서 입지는 탄탄했지만, 어렵게 개발한 신기술을 그대로 두기엔 너무나 아쉬워 1999년 창업했다.

"아인슈타인 수준의 연구 업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못 준다면 하루라도 빨리 창업하는 게 사회에 도움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당시 휴대폰은 흑백 창(窓)이었고, 창 뒤쪽에서 빛을 내주는 소자가 필요했다. 얇으면서도 저전력으로도 빛을 발하는 EL소자가 휴대폰 창 발광소자로 적합했다. 신 사장은 휘도(輝度)가 좋은 점을 내세워 창업 1년 반 만에 대만 업체 등에 연간 30억원대의 EL소자를 납품했다.

그런데 2004년부터 매출이 10억원대로 뚝 떨어졌다. "휴대폰 창이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면서 시장 자체가 사라져 가는 줄 몰랐어요."

EL소자는 휴대폰 창 전체에 백색광을 내는 소자여서 다양한 빛깔을 구현할 수 없다. 신 사장은 신수종 사업으로 키패드 뒤쪽에서 빛을 내는 키패드EL을 택했다. 마침 2004년 전략 휴대폰 '레이저'를 개발하던 모토로라와 닿았다. 키패드EL은 EL보다 기술적으로 더 어려운 제품이다. 사용자가 누르는 키패드 뒤쪽에 키패드EL이 있다 보니 잘 휘어져야 한다. 당시 휘어지는 키패드EL 시장은 미국의 로저스사가 독점했다.

신 사장이 모토로라에 키패드EL을 납품하려면 로저스의 특허를 사용하지 않는 신기술이 필요했다.

"로저스는 기판에 해당하는 필름 위에 회로를 그려 넣는 적층(積層) 구조였는데, 기판과 회로를 하나의 부품에 집약하면 특허도 피하면서 얇은 키패드EL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고생 끝에 결국 성공했어요."

모토로라의 레이저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2006년 매출은 전년 대비 5배 이상 늘었다. 그는 주력 제품을 다시 스마트폰 터치패널(스마트폰의 겉 유리와 하부의 전자회로)로 바꾸기로 했다. 터치패널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조작한다. 신 사장은 남들보다 반년 빠른 2008년 터치패널 사업을 시작했다.

위기는 또 찾아왔다. 엉뚱한 곳에서. 은행 권유로 가입한 환율 연동 상품인 키코(KIKO)로 2008년 매출의 절반이 넘는 200억원을 날렸다. 최대 납품처인 모토로라의 레이저도 시장에서 외면받아, 키패드EL 매출도 급격히 줄었다. 결국 직원 600명 중 40%가 넘는 250명을 감원했다. "하루하루 회사 돈이 빠져나가는 고통 가운데 터치패널 하나만 보고 버텼습니다."

마침내 2009년 2분기부터 터치패널 매출이 본격적으로 발생했다. 회사 매출도 2009년 1200억원, 2010년 2400억원으로 급상승했다. 작년부터는 삼성전자에 터치패널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올해 매출은 4700억원으로 예상한다. 직원도 위기 때보다 5배가량 늘었다. '3년 이내에 매출 1조원 돌파'라는 새로운 목표도 세웠다.

"급변하는 휴대폰 시장 환경에서는 오늘의 효자 기술도 내일이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시장이 원하는 기술을 알아내 안정적인 회사를 만들어야지요."

☞EL(electroluminescence·전계발광)소자

형광등처럼 형광 물질을 사용해 빛을 낸다. 한 번에 넓은 면적으로 빛을 발산하기 편하면서 값이 싸지만, 다채로운 색깔을 구현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