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사원된 청와대 前비서관 "이제야 내일 찾아"

"쉰이 넘어가면서 인생을 재정비할 필요를 느꼈어요, 75세까지 20년을 더 일해야 하는데 뭘 할지 정말 고민됐죠."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연설비서관(1급)을 거쳐 효성그룹 상무 등을 지낸 강원국(51)씨가 최근 한 출판사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강씨는 지난 26일 오후 서울 경복궁 인근 출판사 '메디치'의 사무실을 청소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청소 용역업체를 쓰는 대신 매주 금요일마다 직원들이 직접 청소를 한다. 그는 3월까지만 해도 KG그룹이라는 회사의 임원이었다. 임원용 승용차도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다 버리고 작은 출판사의 평사원이 됐다. 그의 명함엔 '기획편집자'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대우그룹에 다닐 때 김우중 회장의 연설문을 담당한 인연으로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에 들어가 꼬박 8년을 대통령 연설문을 담당했다. 외부 일정이 하루 1~2개 있는 대통령의 연설 원고를 만들고, 외부인도 못 만나는 연설 비서관은 청와대에서도 다들 기피하는 3D 직업이다. 그는 "고스트 라이터(ghost writer)로서의 삶은 결코 화려하거나 행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일주일에 평균 2~3일은 집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즉석연설'이 잦을 경우 곤란한 일을 겪기도 했다. 그는 "언젠가 3·1절 축사에서 노 전 대통령이 원고에 없던 일본 과거사 문제를 언급하는 바람에 민정수석실에서 조사를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대통령의 '말'을 담당하며 '최고 권력'의 바로 옆까지 가본 그였지만 출판사에선 완전 초보다. 명함에 '수습'을 넣을까도 생각했지만, 그것만은 임원 출신 평사원을 받은 출판사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언젠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하신 말씀"이라며 "앞으로는 생산연령 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누구든 75세까지 일하지 않으면 국가 경제 자체가 안 돌아가는 시기가 오고 있다"고 했다. 결국 "임원 2~3년 더 하는 것보다 20~30년 더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것이 그의 셈법. 그는 "농민신문 기자인 아내와 함께 나중에는 프리랜서 출판기획자로 살아가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두 대통령의 연설 스타일에 대한 책을 집필하는 계획도 갖고 있다. 그는 "더 이상 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며 "이제야 내가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찾은 것 같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