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지난밤 무엇을 했는지 이 책은 모두 알고 있지만…

우리나라 최대의 기록유산은 무엇일까. 4768만 자(字) '조선왕조실록'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실록의 5배인 2억4250만 자 분량 기록이 있다. 단일 기록으로는 세계 최대 기록물이라는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다. 임금의 말과 행동거지, 신하들의 상소, 국정의 보고·처리, 임금과 신하가 의견을 주고받은 내용뿐 아니라 매일의 날씨와 강수량까지 시시콜콜하게 기록해놨다. 승정원일기는 1차 속기록, 실록은 정식으로 기록한 2차 사료인 셈이다.

한국고전번역원(원장 이동환)과 '교육에서 희망을 찾는 국회의원 모임'(대표의원 유기홍)은 3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책간담회 '승정원일기를 깨우자'를 개최한다. '승정원일기'의 우수성을 알리고 번역 지원을 확대하자는 취지다.

번역이 되지 않았다고? 그렇다. 김범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전체 분량 중에서 번역된 부분은 약 10%"라며 "지금 같은 속도라면 90여 년이 걸릴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고 말했다. 유기홍 의원은 "올해 교육부 예산에 한국고전번역원의 '승정원일기' 조기 번역 등에 필요한 24억원을 증액하려 했으나 삭감됐다"며 "한국고전번역원과 대책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1623년(인조 원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후기 288년의 기록을 3243책에 담은 '승정원일기'는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지만 지금까지 활용된 예는 상대적으로 적다. 간담회 주제발표를 맡은 정만조 국민대 명예교수는 "국정 운영 전반에 걸쳐 현장성을 살린 다큐멘터리적 기록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발표자인 영화 '광해'의 작가 황조윤씨는 "빨리 한글로 완역돼 현실감 있는 궁의 디테일을 콘텐츠로 살려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