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열차' 타고… 독거노인 42명, 설레는 봄소풍

꽃가루 날리던 지난 2일 오전 햇살 따스한 서울 정릉1동 주민센터 마당에 할머니들이 한껏 들뜬 표정으로 서성였다. 분홍색 재킷에 꽃무늬 스카프를 두르고 한껏 멋을 낸 이난구(77) 할머니는 "나도 젊어선 예쁘다고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다"며 웃었고, 붉은색 재킷에 스키니 청바지를 입고, 반짝이 신발을 신은 박숙자(78) 할머니는 "어제는 괜히 잠이 안 오더라"고 말했다.

주민센터 앞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할머니 32명, 할아버지 10명이 모였다. 이날은 이 동네에서 혼자 사는 어르신들이 1년에 한 번 봄 소풍 가는 날이었다. 자식들과 연락이 끊겨 사회복지사가 유일한 말벗인 어르신들은 매년 이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정릉1동 개인택시 기사들은 모임을 만들어 벌써 34년째 독거노인을 모시고 인근 관광지에 봄나들이를 다녀오고 있다. 모임 회장인 남상준(63)씨는 "나이 들어 혼자 사는 것도 서러운데 보살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분들"이라며 "좋아하시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그 재미에 중독돼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네 부녀회원 15명도 이날 여행 도우미로 나섰다.

기차처럼 일자로 늘어선 택시 뒷좌석에 어르신 3명이 한 조를 이뤄 탑승했다. 4호차에 탄 김순이(69) 할머니는 택시가 시동을 걸자 "어려서 소풍 한 번 못 간 게 한(恨)이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성북경찰서 정릉파출소 순찰차는 운행 편의를 위해 선두에서 '택시열차'를 에스코트해줬다. 트렁크 위에 태극기를 단 '택시열차'는 비상등을 깜빡이며 나들이 장소인 임진각을 향해 내부순환로를 달렸다.

'택시열차'는 1980년, 정릉1동에 사는 택시기사들이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어르신들이 가장 원하는 일을 해드리자며 의기투합해 시작됐다. 소규모로라도 계속되던 '택시열차'는 2009년부터 3년간 끊겼다.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운전을 그만두는 기사도 늘고 연락도 잘 되지 않아 흐지부지됐던 것이다. 지난해 '택시열차 봉사대'의 창단 멤버였던 남상준씨가 다시 모임을 추스르고 엄삼순(59) 부녀회장이 산파역을 맡으면서 '택시열차'는 '재개통'됐다. 엄씨는 "부녀회에서 반찬봉사, 말동무 봉사를 하며 어르신들과 얘기를 해보면 거의 모든 어르신의 소원이 '우리 바람 좀 쐬게 해줘'였다"면서 "30여년간 계속된 전통 있는 행사를 다시 살려보자고 봉사대원들과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주민자치위원회는 헌옷 판매 행사를 해 얻은 수익금 50여만원을 보탰다.

어르신들을 태운 '택시열차'는 한 시간 만에 임진각에 도착했다. 만성 천식에 시달리던 아내를 10년 전 떠나보내고 햇볕도 안 드는 방에서 혼자 살고 있는 김영회(77) 할아버지는 "혼자된 후 한강에도 나가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소풍을 나오니 꿈만 같다"고 했다. 임진각 망배단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이난구 할머니는 "늙었으니 예쁘게 찍어줘"라고 소리쳐 웃음이 터졌다.

점심을 마치고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돌아보고 어르신들이 '택시열차'에 다시 탑승하자 햇볕이 쨍쨍하던 하늘에선 거짓말처럼 비가 내렸다. 길게 늘어선 '택시열차'가 출발지인 동 주민센터에 도착하기 직전, 하늘은 다시 맑게 갰다. 엄 부녀회장은 "하늘도 오늘의 여행을 돕는 것 같다"고 했다. 남상준씨는 "여행 날 기사들을 최대한 모아도 15명 이상 모이기 어려워 늘 아쉽다"며 "못 가신 어르신들이 '나는 왜 안 데려갔느냐'고 물으실 때마다 항상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