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차거부 현장서 들켜도… 택시기사 대부분 발뺌

"승차 거부?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이 ××들아."

3일 0시 10분쯤 서울 강남역 사거리. 택시 앞을 막아선 서울시 교통지도과 직원들에게 기사 임모씨가 욕설부터 내뱉었다. 임씨는 이날 강남구 학동사거리로 가자던 여성들을 태우지 않다가 단속반에 적발됐다. 이 차를 타려던 장모(20)씨는 "목적지를 말하자 차 문을 잠근 채 그대로 출발했다"고 말했지만, 기사는 승차 거부 사실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40여분간 욕설을 퍼부으며 장씨와 서울시 직원들을 위협했다.

서울시는 지난 1일부터 문을 잠그거나 '빈 차' 표시등을 일부러 꺼놓는 등 승차 거부 행위를 하는 택시를 특별단속하고 있다. 본지는 2일 밤 10시부터 3일 새벽 1시 30분까지 서울 강남역·홍대입구역·종로에서 단속팀과 동행했다.

이날 30여대의 택시가 승차 거부로 적발됐지만, 이를 순순히 인정하는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단속원 이모(62)씨는 "승차 거부든, 자격표시제 위반이든 이를 인정하는 기사는 100명 중 1~2명 수준"이라며 "밥을 먹으러 가는 중이었다거나 교대하러 가는 중이었다는 등 거짓말부터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단속반원들이 앞을 막아서도 속도를 내 도망가는 택시들이 있어 위험한 장면이 수시로 연출됐다.

이날 0시 30분쯤 홍대입구역 앞 도로에서는 승차 거부가 적발된 기사 한모씨가 적발통지서를 뺏기 위해 단속반원들에게 달려들었다. 이 와중에 한씨의 어깨에 부딪혀 단속반원 입술 안쪽이 터져 피가 났다. 단속반은 "이러다 구속될 수 있다"고 말했지만, 한씨는 "살기도 싫은데 구속되면 좋지"라며 오히려 막무가내로 나왔다.

서울시가 최근 중점 단속 대상으로 밝힌 표시등 비상버튼 불법 개조 택시도 적발됐다. 2일 밤 10시 15분쯤 종로에서 승객이 타고 있지 않은데도 택시표시등이 꺼진 택시를 단속반이 세워 확인하자 표시등 버튼이 개조돼 있었다. 장거리 승객을 골라 태우려고 표시등을 임의로 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기사 장모씨는 "입사할 때부터 택시가 이렇게 돼 있었다"고 말했다. 3일 0시쯤 홍대입구역에서 표시등을 끄고 다니다 적발된 기사 한모씨는 "표시등이 고장났다"고 말했지만 등이 다시 켜지자 "승객을 내려준 뒤 미처 다시 켜지 못했다"고 말을 바꿨다.

단속반은 시민들과도 승강이를 벌여야 했다. 승차 거부 적발 후 행정처리를 하는 사이 시민들은 "빨리 처리하고 다른 차를 단속하라"고 보챘다. 0시 30분쯤 강남역에서는 한 취객이 승차 거부 적발통지서를 받게 된 택시를 타겠다고 우겼다. 단속원들이 "다른 택시를 잡아주겠다"고 했지만 이 취객은 혀 꼬인 목소리로 "니들 나한테 왜 이래. 나는 이 차 탈 거야"라며 5분가량 택시 앞문을 잡고 버텼다.

단속원 김모(62)씨는 "욕하고 멱살부터 잡는 기사들도 부지기수인 데다 승차 거부 택시를 잡으면 왜 못 타게 하느냐고 항의하는 시민들도 상당수"라며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올해 초부터 이날까지 택시 승차 거부, 자격표시제 위반, 정류장 질서 위반 등으로 2102건을 적발했다. 서울시의 승차거부 단속 건수는 2009년 2105건에서 2010년 5605건, 2012년 6225건으로 꾸준히 느는 추세다. 승차 거부 사실이 인정되면 2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