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해운·조선 회사채 8兆, 올해 만기 돌아온다

제2, 제3의 STX그룹이 또 출현할까? 요즘 은행권과 자본시장에선 국내외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건설·조선·해운 등 '3대 위험 업종'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올해 국내 기업이 갚아야 할 회사채 40조원 중 3대 업종 기업의 회사채가 8조원에 달하고, 이 중 5월에만 1조원이 몰리는 등 3대 업종 기업의 자금난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업종의 위험군 기업들은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어 회사채 롤오버(roll over·차환 발행)가 어려워지자, 증자(增資) 등 비상수단을 강구하고 있지만 시장 반응은 싸늘하다. 이에 따라 채권시장에서는 '5월·10월 회사채 대란설'까지 나오고 있다.

◇갚을 회사채는 산더미인데 신규 회사채 발행은 막혀

요즘 회사채 시장에선 신용등급 'A등급'인 대기업들마저 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시아나항공과 한화가 지난달 각각 1500억원, 2000억원대의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 조사를 했다가 회사채를 사겠다는 투자자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SK네트웍스·포스코에너지·삼성에버랜드·SK텔레콤·이마트·CJ·삼성정밀화학 등 이른바 신용등급 A등급 이상인 우량 기업마저 회사채 수요 조사를 하면 발행 물량의 40% 정도만 매수자가 나서는 실정이다.

건설·조선·해운 등 위험 업종은 신용등급 대비 1~2%포인트의 보너스 금리를 주겠다고 해도 회사채 매수자를 찾기 어렵다. 한화건설이 지난달 3년 만기 회사채 1500억원어치를 발행하려 했으나 수요가 700억원에 불과했고, 3월 말 한진해운이 발행하려 했던 3년 만기 회사채 500억원어치는 사겠다는 신청자가 아무도 없었다. LG경제연구원 조영무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9월 웅진그룹의 전격 법정관리 사태 이후 투자자들이 기업 부실 리스크(위험)에 주목하면서, (건설·조선·해운 등) 업황이 좋지 않은 업종의 회사채를 사려고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처럼 회사채 매수자는 없는데 갚아야 할 회사채는 속속 돌아오고 있다. 본지가 5일 확인한 올해 회사채 만기 현황에 따르면 연말까지 국내 건설·조선·해운 업종 기업이 갚아야 할 회사채는 총 7조6900억원에 달한다.  A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3대 업종 기업의 신용등급이 무더기 하향 조정되면서 회사채 발행이 더욱 어려워진 상태"라고 말했다.

◇대출·증자도 어려워…경기 회복만이 희망

건설·조선·해운 업종 기업은 회사채 상환 자금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특히 이달(5월)에 몰려 있는 1조600억원을 막기 위해 은행 대출은 물론이고, 신주인수권부사채(BW)와 교환사채(EB) 발행 등 모든 방법이 총동원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어느 쪽도 쉽지 않아 보인다. 업종 전망이 너무 불투명해 누구도 선뜻 돈을 빌려주거나 투자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B은행 자금담당 부행장은 “회사채 상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문의하는 경우가 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어느 은행도 대출을 늘려주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특히 부실 위험이 큰 기업은 자산 매각 같은 자구책 없이 추가 대출은 안 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BW와 EB의 경우 일부 발행이 성사되는 등 상대적으로 여건이 나아 보인다.

시장에서 자금을 구하는 데 실패한 기업들은 증자와 자산 매각에 눈을 돌리고 있다. D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자산 매각과 차입으로 (건설·조선·해운 3대 업종이) 5월을 무사히 넘기더라도 1조5600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는 10월이 또 고비”라며 “국내외 경기 회복이 계속 늦어지면 정부 주도의 선제적 위기관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