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름가을겨울… 다시, 1991년의 봄

1990년 12월 30일, 데뷔 3년차인 봄여름가을겨울은 공연을 앞두고 무척 긴장해 있었다. 이날 서울 63빌딩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공연을 음반으로 녹음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처음 시도되는 라이브 앨범이었다. 엔지니어는 이미 나흘 전 "기술도 없고 장비도 없다"며 포기를 선언한 상태였다. 그러나 당시 1억원을 들여 6개월간 준비한 프로젝트를 그냥 접을 수는 없었다. 이윽고 연주곡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로 무대를 열자, 엄청난 환호에 음악이 묻혀버렸다. 음반에는 이 곡 대신 이틀 전 서울 숭의음악당에서 녹음한 것을 실어야 했다.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은 봄여름가을겨울이 11, 12일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기념 무대에 오른다. 이들은 23년 전 공연을 수록한 한국 최초의 라이브 앨범 '봄여름가을겨울 라이브(1991)'에 실린 18곡을 음반과 똑같은 순서로 연주한다. 쉰한 살 동갑인 김종진과 전태관은 28세 최전성기로 돌아가 보는 감회를, 그들과 함께 나이 든 팬들은 초기 히트곡 전부를 들을 수 있는 기회다. "힐튼호텔에서 공연하면 관객이 남대문까지 줄 서던 시절"이다.

"25주년을 어떻게 색다르게 해볼까 하다가, 첫 라이브 앨범 때로 돌아가 보자 해서 생각해낸 거예요. 우리 라이브 중에 가장 많이 사랑받은 음반이기도 하고요." 지난 2일 서울 도곡동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은 "팬들도 '91년 라이브 음반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사실 봄여름가을겨울에 앞서 1986년 들국화가 라이브 앨범을 냈었다. 그러나 이는 스튜디오에 팬 수십 명을 불러 녹음한 것으로, 진정한 라이브 음반이라고 할 수는 없다. 라이브에 유독 애정을 쏟는 봄여름가을겨울은 데뷔 후 총 10장의 라이브 앨범을 내놓았다. 91년 앨범은 80만장이나 팔린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그땐 연말공연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12월 31일 대신 30일에 공연을 했어요. 31일엔 대관도 해주지 않았죠. 공연장 직원들이 신정 쇠러 가야 한다는 이유였죠." 사랑과평화, 김현식밴드에 이어 조용필과 위대한탄생에서 활동했던 두 사람은 1988년 독립했다. 그해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과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 이듬해 2집에서 '어떤 이의 꿈'과 '못다한 내 마음을' 등이 크게 히트했다. 특히 관악기를 동원한 이들의 펑크(funk) 음악은 한국에 '퓨전 재즈'라는 장르를 처음 알렸다. 사실 이들은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시절에도 래리 칼튼이나 리 리트너의 펑크 곡을 자주 연주했었다. "오랫동안 좋아했고 연주하던 장르"를 작곡해 연주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새롭다며 열광했다. 특히 김종진의 연주곡은 기타 명곡이 반드시 속주(速奏)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밴드에게 공연이란 밤 무대에 서는 것을 뜻했고, "남의 노래 반주 안하고, 밤 무대 안 선다"는 두 가지 원칙을 세운 이들이 팬과 직접 만날 기회는 매우 적었다. 당시 한 나이트클럽에서 6개월에 2억원을 제시했으나 거절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89년 1월에 영애 누나(한영애) 공연에 게스트로 서게 됐어요.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를 하는데 모든 관객이 다 따라부르는 거예요. 야, 그때 그 감격은 정말 잊을 수 없어요. 그날 이후 우리만의 공연을 시작할 수 있었죠." 이들은 이번 25주년 공연에 한영애를 게스트로 초대했다. "우리를 수면 위로 올려준 사람"이란 이유다.

이들의 91년 라이브 앨범은 부틀렉(비공식 녹음)처럼 들릴 만큼 녹음 상태가 좋지 않다. 그러나 이 음반은 일종의 문화사적 가치도 있다. 이를테면 "앵콜, 앵콜"을 외치며 박수를 점점 빨리 치는 문화는 그때 이미 있었다. 그러나 "김종진 파이팅!" 하는 외침은 어색하게 들린다.

이번 공연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의 3집 이후 곡들은 앙코르로 들려줄 예정이다. 신곡 '고장난 시계'도 처음 선보인다. 두 사람은 "우리는 이른바 대형 뮤지션이 되지는 못했지만 10년, 20년 뒤에도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문의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