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당신을 그립니다, 내 이름은 알리스 닐
입력 : 2013.05.06 23:50
[死後 더 주목받는 화가 알리스 닐, 아시아 첫 전시]
-굴곡진 인생
한 남자와 결혼·네 남자와 동거 두 번의 자살 시도·정신병원…
무명에서 벗어난 말년엔 결장암
-영혼을 수집하는 화가
어떤 사조도 따르지 않는 그림… 피카소·코코슈카 등에 비견 돼
워홀 "있는 그대로 나를 그렸다"
내 이름은 알리스 닐(Alice Neel). 인물화를 주로 그린 미국 화가예요. 미국 아트뉴스지는 저를 두고 "그녀가 남자이고 명문가 출신이었다면 루시앙 프로이트에 비견되는 평가를 얻었을 것"이라고 했고, 뉴욕타임스는 "2차 대전 이후 그녀처럼 표현적이며 심리적인 통찰력으로 인물화를 그린 작가는 없었다"고 했지요.
사실 나는 그냥 그려야만 했던 거예요. 밥벌이를 위해서, 아이들을 기르기 위해서. 만나서 좋아하게 된 사람들을 그렸어요. 정신적 깊이, 일상에서 묻어나는 특별함, 제3자에게는 뚜렷이 보이지만 당사자는 잘 모르는 특징 같은 것들. 그래서 평생 가난했지만 후회는 없어요.
내 고향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시골이에요. 어느 날 아빠가 묻더군요. "알리스, 너도 '그냥 여자'로 살 거니?" "아뇨, 난 여자라는 이유로 하고 싶은 일도 못 하는 '2등 시민'으로 살진 않겠어요."
사실 나는 그냥 그려야만 했던 거예요. 밥벌이를 위해서, 아이들을 기르기 위해서. 만나서 좋아하게 된 사람들을 그렸어요. 정신적 깊이, 일상에서 묻어나는 특별함, 제3자에게는 뚜렷이 보이지만 당사자는 잘 모르는 특징 같은 것들. 그래서 평생 가난했지만 후회는 없어요.
내 고향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시골이에요. 어느 날 아빠가 묻더군요. "알리스, 너도 '그냥 여자'로 살 거니?" "아뇨, 난 여자라는 이유로 하고 싶은 일도 못 하는 '2등 시민'으로 살진 않겠어요."
고교 졸업 뒤 돈을 모아 1921년 필라델피아 여성디자인학교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운명처럼 쿠바에서 온 카를로스 엔리케스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했지만 3년 만에 헤어졌어요. 남편은 쿠바에 맨해튼만 한 농장을 가진 부잣집 아들이었어요. 1928년 둘째 딸을 낳자 "함께 아바나로 가자"고 하더군요. 난 거기가 싫었어요. 남편은 딸을 데리고 아바나로 떠났고 나는 신경쇠약에 걸렸어요. 두 번의 자살 시도 그리고 정신병원 입원.
1년 후 퇴원해 나는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뱃사람과 3년을 살았어요. 그 남자는 여자가 돈도 안 되는 그림 그리는 게 꼴같잖다면서 내 그림 30점을 태워버렸어요. 나이트클럽 가수였던 두 번째 동거남과 맏아들 리처드를 낳았죠. 1939년이에요. 영화감독 샘 브로디와는 1941년 둘째 아들 하틀리를 낳았고요.
◇"나는 영혼을 수집하는 화가"
공산주의자들과 어울리다 FBI 조사도 받았어요. 절 '로맨틱 보헤미안 타입의 공산주의자'라고 썼더군요. 잘 봐준 거죠. 그 수사관, 모델 부탁은 거절하더군요.
뉴욕 허름한 아파트에 살면서도 아들 둘은 사립학교에 보냈어요. 다행히 두 아들은 컬럼비아대를 졸업하고, 리처드는 변호사, 하틀리는 의사가 됐죠. 좌파 친구들은 날 비난했죠. "왜 하필 자본주의 속물이나 가는 사립학교냐." 철없는 친구들 같으니. 부모의 사상이 뭐든 아이들은 당당히 경쟁하며 살게 해줘야죠.
◇"평생 내가 믿는 것을 그렸다"
사람들은 내 그림 속에서 피카소나 코코슈카(1886~1980·오스트리아 표현주의 화가)를 찾아내려고 해요. 하지만 나는 어떤 사조를 따르거나 작가를 모방한 적이 없어요. 내 그림 속 사람들은 늘 관람자의 눈을 들여다보죠. 배에 입은 총상 자국을 드러낸 '앤디 워홀'(1970)을 보세요. 앤디는 말했어요. "이봐 알리스. 난 사람들이 맘대로 덧씌운 내 모습에 신물이 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려줘." 그는 내가 그린 자기 모습이 가장 좋다고 했어요. '수 실리와 그녀의 남편'(1948)은 아이를 유산하고 슬픔에 잠긴 친구 부부예요. 혼이 나간 듯한 여자, '괜찮아, 괜찮아' 하며 아내를 달래는 남편의 아픔. 느껴지지 않나요?
난 그저 그런 작가일 뿐이었어요. 하지만 엘리자베스 페이튼 같은 후배 화가들이 내게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1974년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렸죠. 갑자기 부르는 곳이 많아졌어요.
말년에 인생 좀 풀리나 싶더니, 글쎄 덜컥 결장암에 걸렸네요. 그게 끝이었어요. 재산이라곤 그림용 앞치마 2개, 팔레트 2개, 옷 네다섯 벌이 전부. 아, 맞다. 침대 매트리스 밑에 현금이 담긴 깡통이 있었을 텐데. 손주들 학비로 모아둔 5600달러쯤이죠.
지난 2000년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모던 등에서 내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를 열었어요. 요즘 경매에서도 내 그림이 인기가 많다지요?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 난 그저 '하고자 한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았을 뿐이죠. '기구한 인생'으로 보일지라도 난 충분히 행복했어요. 한 남자와 결혼했고, 네 남자와 같이 살았으며, 사람들의 인생을 그림에 담은 여자, 내 이름은 알리스 닐 이에요.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미국 화가 알리스 닐(1900~1984)의 전시가 6월 2일까지 열린다. 아시아에서 첫 전시. 그녀는 최근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작가 중 하나다. 닐의 아들 하틀리 부부 인터뷰, 각종 기사와 자료 등을 종합해 그녀의 인생과 작품 세계를 재구성했다. (02)2287-3500
1년 후 퇴원해 나는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뱃사람과 3년을 살았어요. 그 남자는 여자가 돈도 안 되는 그림 그리는 게 꼴같잖다면서 내 그림 30점을 태워버렸어요. 나이트클럽 가수였던 두 번째 동거남과 맏아들 리처드를 낳았죠. 1939년이에요. 영화감독 샘 브로디와는 1941년 둘째 아들 하틀리를 낳았고요.
◇"나는 영혼을 수집하는 화가"
공산주의자들과 어울리다 FBI 조사도 받았어요. 절 '로맨틱 보헤미안 타입의 공산주의자'라고 썼더군요. 잘 봐준 거죠. 그 수사관, 모델 부탁은 거절하더군요.
뉴욕 허름한 아파트에 살면서도 아들 둘은 사립학교에 보냈어요. 다행히 두 아들은 컬럼비아대를 졸업하고, 리처드는 변호사, 하틀리는 의사가 됐죠. 좌파 친구들은 날 비난했죠. "왜 하필 자본주의 속물이나 가는 사립학교냐." 철없는 친구들 같으니. 부모의 사상이 뭐든 아이들은 당당히 경쟁하며 살게 해줘야죠.
◇"평생 내가 믿는 것을 그렸다"
사람들은 내 그림 속에서 피카소나 코코슈카(1886~1980·오스트리아 표현주의 화가)를 찾아내려고 해요. 하지만 나는 어떤 사조를 따르거나 작가를 모방한 적이 없어요. 내 그림 속 사람들은 늘 관람자의 눈을 들여다보죠. 배에 입은 총상 자국을 드러낸 '앤디 워홀'(1970)을 보세요. 앤디는 말했어요. "이봐 알리스. 난 사람들이 맘대로 덧씌운 내 모습에 신물이 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려줘." 그는 내가 그린 자기 모습이 가장 좋다고 했어요. '수 실리와 그녀의 남편'(1948)은 아이를 유산하고 슬픔에 잠긴 친구 부부예요. 혼이 나간 듯한 여자, '괜찮아, 괜찮아' 하며 아내를 달래는 남편의 아픔. 느껴지지 않나요?
난 그저 그런 작가일 뿐이었어요. 하지만 엘리자베스 페이튼 같은 후배 화가들이 내게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1974년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렸죠. 갑자기 부르는 곳이 많아졌어요.
말년에 인생 좀 풀리나 싶더니, 글쎄 덜컥 결장암에 걸렸네요. 그게 끝이었어요. 재산이라곤 그림용 앞치마 2개, 팔레트 2개, 옷 네다섯 벌이 전부. 아, 맞다. 침대 매트리스 밑에 현금이 담긴 깡통이 있었을 텐데. 손주들 학비로 모아둔 5600달러쯤이죠.
지난 2000년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모던 등에서 내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를 열었어요. 요즘 경매에서도 내 그림이 인기가 많다지요?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 난 그저 '하고자 한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았을 뿐이죠. '기구한 인생'으로 보일지라도 난 충분히 행복했어요. 한 남자와 결혼했고, 네 남자와 같이 살았으며, 사람들의 인생을 그림에 담은 여자, 내 이름은 알리스 닐 이에요.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미국 화가 알리스 닐(1900~1984)의 전시가 6월 2일까지 열린다. 아시아에서 첫 전시. 그녀는 최근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작가 중 하나다. 닐의 아들 하틀리 부부 인터뷰, 각종 기사와 자료 등을 종합해 그녀의 인생과 작품 세계를 재구성했다. (02)2287-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