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쇼케이스 "긴 말 필요없다, 느껴라"

직접적인 설명은 한 줄도 없었다. 장미꽃으로 만든 고급 화장수를 소개하는 한 행사. 시작은 기포가 톡톡 터지는 장밋빛 식전주였다. 식탁엔 분홍빛 리본이 달린 메뉴판이 놓였고, 앙증맞은 꽃잎이 뿌려진 샐러드가 나왔다. 곳곳엔 장미향을 물씬 뿜어내는 향초를 켰다. 주최 측은 손님에게 화장수를 소개하는 작은 책자와 곱게 포장한 장미꽃을 하나씩 나눠줄 뿐 더는 긴 말을 하지 않았다. 손님들은 그저 장미 향기에 취해 자리를 떴다.

이른바 퍼포벤트(Perforvent·퍼포먼스+이벤트). 단순한 신제품 발표회나 간담회 형식을 뛰어넘어 브랜드의 성격과 철학을 공감각(共感覺)으로 경험하게 하는 행사를 일컫는 신조어다. 광고 회사 상암커뮤니케이션즈의 황원미 국장은 "직설 어법은 더는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 이젠 말보단 경험을 추구하는 시대"라면서 "이처럼 설명보단 분위기와 느낌으로 소통하려는 행사에 퍼포벤트라는 이름을 붙여봤다"고 말했다.

◇공감각으로 말 걸다

올해 초 에르메스 코리아는 자사 사무실에서 기자와 VIP를 상대로 '스포팅 라이프(Sporting life)'라는 주제로 신제품 발표회를 열었다. 운동에서 영감을 받은 각종 컬렉션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특이한 건 인테리어. 사무실 내부를 아예 테니스구장, 탁구장, 야구장처럼 꾸몄다. 인조 잔디를 깔고 운동회를 연상시키는 깃발도 달았다. 손님에겐 즉석에서 팝콘과 추러스, 솜사탕 등을 만들어 내놨다. 에르메스 측은 "'우리 제품 콘셉트가 이렇다'고 말로 설명하는 것보단 장소와 음식만 봐도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했다.

홍보·이벤트 대행 회사 문앤초이 최보은 대표는 "오감(五感)을 최대한 자극하는 행사일수록 '성공했다'는 평을 듣는다"고 말했다. "검은 옷을 많이 만드는 디자이너를 알리는 행사라면 음식까지 다 검은색으로 통일해서 내놓는 식인 거죠."

◇'아우라'와 '아이디어'의 싸움

아이디어 싸움이 치열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디지털 기기를 넣는 각종 가방을 만드는 회사 '인케이스'는 1980년대 처음 나왔던 8비트 게임기부터 각종 스마트폰 게임 도구까지 차례대로 진열해 눈길을 끌었다. "우리가 디지털 기기와 관련이 많은 회사이고, 우리는 언제나 그 디지털 기기의 시작을 함께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행사였다."

사람들이 잘 알아채지 못하는 디테일도 중요해졌다. 최보은 대표는 "랄프 로렌 행사 때는 음식을 나르는 종업원 유니폼은 물론이고 머리 모양, 장갑과 면 냅킨 가장자리 실 색깔, 쟁반까지 일일이 미리 맞춰보고 준비해서 통일시켰다"면서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는 건 결국 '우리는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