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色의 여왕, 原色의 여자를 그리다

꽃잎처럼 원모양으로 헤엄치는 빨간 금붕어 다섯 마리, 새파란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노란색 꽃 두 송이, 눈두덩을 초록색으로 칠하고 새빨간 천조각을 걸친 모델…. 강렬한 원색의 이미지가 눈을 톡 쏜다. 일본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인 니나가와 미카(41·사진)의 사진집을 보면서 "당신의 영화를 많이 닮았다"고 했더니 "아니다. 내 영화가 사진들을 닮은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의 손톱에는 진한 분홍색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었다. '원색(原色)의 여왕'다웠다.

'헬터 스켈터'(9일 개봉)로 한국을 찾은 니나가와 감독을 만났다. 그는 2001년 일본 사진계 최고 권위의 '기무라 이헤이'상을 받으면서 사진작가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2005년 영화 '사쿠란'을 내놓으면서 영화감독으로서 재능을 인정받았고, 지난해 12월 일본에서 개봉한 두 번째 영화 '헬터 스켈터'로 평단과 관객의 호응을 모두 얻었다. 그의 사진은 자연스러움이나 일상성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설계된 인공의 미학을 보여준다. 영화에도 사진의 색감과 기운을 그대로 가져간다. 니나가와 감독은 "난 다만 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향해 셔터를 누를 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원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손톱과 귀, 성기를 제외한 전신을 성형(成形)한 여배우 리리코가 '헬터 스켈터'의 주인공이다. 그는 아름다움을 향한 멈출 수 없는 욕망, 치명적인 과거가 알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매순간 불안에 떠는 인물. 미(美)와 인기에 대한 집착 때문에 파국을 맞는 역할은 사와지리 에리카(27)가 맡았다. 드라마 '1리터의 눈물'(2005)과 영화 '박치기'(2005)에서 청순한 이미지로 한국에서도 인기를 얻었지만 언제나 스캔들의 중심에 서 있는 일본 최고의 여배우다. "모든 관객, 특히 여성 관객이 수긍할 정도로 압도적인 미모를 가진 여배우 중 연기력이 뛰어난 이가 바로 사와지리 에리카"라는 게 감독의 평이다.

미모에 대한 동경과 성형에 대한 열광은 일본과 한국 모두 강한 편이다. 감독은 "한국인들이 외모에 관심이 많고 관련 산업도 발달했다고 알고 있다"며 이 영화를 볼 한국 관객들의 반응을 궁금해했다. 그는 "아름다움은 때로 세상이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예쁘게 태어나면 세상을 편하게 살 수 있으니까. 그 불평등함에 주목한 게 이 영화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아름다운 여성이 꼭 행복할까요? 정말 예쁘지만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의외로 많더군요. 리리코도 아름다워지면 가장 강해질 수 있고, 사람들한테 인정받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잃어갑니다. 그가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세계의 틀을 깨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욕망에 너무도 충실한 나머지 인생이 고달픈 여자들. 니나가와 감독은 현대판 '마녀'(魔女)라고 할 만한 여자들을 영화에 내세운다. 전작(前作) '사쿠란'에선 성격이 드센 게이샤가, 이번 영화에선 아름다움에 미친 여배우가 주인공이었다. 그는 "남성 감독들이 그리는 여성상이란 게 실제 여성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여성 감독으로서 여성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자기의 주장을 강하게 밝힐 수 있고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여자를 좋아해요.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파국을 맞이하는 것도 리리코 스스로의 결정에 의한 것입니다. 어차피 내 인생이니까 내가 결정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