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손으로 지은 '맛있는 詩' 드세요"

세 딸 중 한복선(64)은 어머니 황혜성(작고·前중요무형문화재)을 가장 많이 닮았다. 한데 외모뿐이다. 호기심 많고 오지랖이 넓어서 늘 '사고'를 쳤다. 황혜성이 복선에게 붙인 별명이 '용두사미'였다. "배우고 싶은 게 정말 많았어요. 음식 배우는 틈틈이 피아노, 우쿨렐레, 경기민요, 요즘엔 스포츠댄스까지 섭렵했다니까요. 하하!"

취미뿐 아니다. 조선 궁중음식의 대가였던 어머니의 유업을 이어가는 세 딸 중에서도 한복선은 곧잘 '외도'를 했다. 전통만 알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식품영양학, 외식경영학을 공부했고 약선음식을 따로 배웠다. 10년 전부터는 민화(民畵)도 배운다. "소채(蔬菜)가 많이 등장하는 데다 색감이 화사한 게 궁중음식이랑 꼭 닮았거든요."

이번엔 시(詩)다. 밥상에 오르는 갖가지 음식을 소재로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끄적인 시가 150여편. 지난 3월 계간 '문파문학'으로 등단한 그는, 최근 첫 시집 '밥하는 여자'(에르디아)를 펴냈다. "너무 좋아서 가제본 된 시집을 품에 안고 잤어요. 책표지 그림도 제가 그린 겁니다."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책 속엔 '맛있는 시'들로 그득하다. '찬물에 밥 말아서/먹으면/한여름 짭짤한 땀 맛'이 나는 '오이지'며, '바닷속 엄마의 젖 향 보드라운 아가의 속살'을 닮은 '굴전', '한여름 뭉게구름/그늘진 멍석 위 양푼 속에서/숟가락들 게 눈 감추듯 들락날락/침 흘리며 꿀맛으로 먹는'다는 '열무김치(비빔밥)'까지 그야말로 군침 도는 시들이다.

'뭇국'은 완고했던 음식 명장 황혜성을 추억하며 썼다. "제가 방송에서 뭇국 끓이는 법을 소개했는데, '간을 맞출 때 집에 청장이 없으면 양조간장이나 소금으로 대신하세요' 했다가 어머니께 혼이 났지요. 고집 있게 원칙을 지켜야 전통음식이라시며." 암으로 죽은 친구를 떠올리며 쓴 '혼자 먹어야 하는 밥상'도 뭉클하다. '상처한 남자/몇달을 잘 살았는데/가장 힘든 것이 매일 혼자 먹는 밥상이란다/…/홀로 있다는 것은 혼자 밥 먹는 것/씹어 삼키는 소리 어적어적하고 끄르르 소리/슬픈 적막이 안으로 꽂힌다/….'

한복선은 "음식 안에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사람에게 청년기, 중년기, 장년기가 있듯이 된장도 익는 시기에 따라 청장, 중장, 진장이 있지요. 젊어서는 음식 맛 내는 법에만 열중했는데, 나이 드니 그 안에 담긴 삶의 지혜와 경험, 음식에 깃든 마음이 애틋해져요."

언니 한복려(66·궁중음식연구원 이사장)가 동생의 시집을 품평했다. "등나무꽃 있던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 때부터 우리 형제들 늘 하던 이야기들인데, 이걸 시어(詩語)로 표현한 재주가 대견하네요." 한복선은 자신의 음식 시집을 이 땅의 어머니들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누가 그러데요. '어머니 찬장에 넣어 드리고 싶은 책'이라고. 날마다 밥 짓고 살림하며 살아온 어머니들은 다 아는 얘기들을 주제넘게 써봤지만, 그것처럼 위대한 일도 없다는 생각에…."

한복선의 '음식 시'를 육성으로 들을 기회가 있다. '북촌2경'으로 불리는 서울 창덕궁 돌담 밑에 자리한 '궁중음식연구원'에서 15~16일 열리는 '궁중음식, 소통의 길을 열다'에서다. 궁중음식과 옛 음식, 북한 음식을 일반에 시연하는 행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