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한 현대 미술, 역시 설명이 필요해"

"너무 어렵다" "무슨 난수표냐" "좀 더 쉽게 설명해달라"….

지난해 7월 '백남준 다다익선'을 출간한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에게 지인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책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1988년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모니터 1003대를 설치한 '다다익선'의 제작 과정을 백씨의 그림과 낙서, 기사와 사진만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다익선'을 공동 설계한 김원 대표가 1986년 작품의 구상 단계에서부터 제작 과정 3년 동안 백씨와 주고받은 자료를 모두 모았다. 당시 김씨는 "천재가 끼적인 그림과 메모, 상상력 번쩍이는 아이디어를 나 같은 범인(凡人)이 해설한다는 게 말도 안 되기 때문에 설명을 다 뺐다"고 했지만 독자들은 수긍하지 못했다.

김씨는 "예술 작품은 역시 말로 풀어야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겠더라"며 1년 만에 해례집 '다다익선 이야기'를 출간했다. 서문에 "백 선생님과 관계가 있는 여러분의 열화 같은 요청에 의해 변변찮은 해제(解題)를 덧붙였다. 더구나 그것들은 다른 어느 책에서도 볼 수 없는 백 선생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을 설명하고 싶었다"고 썼다.

백씨가 작품을 구상하게 된 발상에서부터 제작에 얽힌 이야기,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을 꼼꼼하게 담았다. 백씨가 그린 각종 스케치와 메모, 사진 속 순간에도 일일이 해설을 붙였다. 여러 개의 동심원을 그린 그림 옆에는 "어린 아이의 천진스러운 그림을 보는 것 같다. 마치 봉은사에 걸린 추사 김정희의 판전(板殿) 글씨를 연상케 한다"고 썼다. 애초 수상기 200대를 설치하려고 했다가 500대, 1000대, 1003대로 늘어났다는 일화도 들려준다. "1000대쯤은 되어야 크기가 알맞겠다"는 김씨의 제안에 백씨가 "많을수록 좋지. 다다익선이지, 뭘"이라고 해서 작품 이름이 '다다익선'이 됐다. 비매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