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5.09 04:00

절벽, 그 너머 또 절벽… 이 바다엔 코끼리가 산다

충남 황금산
용들의 전투가 벌어졌던 황금산에는 그 용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지나가는 봄날에는 미련 버리고 원색 계절 속으로 길을 떠나자고! / 박종인 기자
충남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에는 '국도 종점' 이정표가 서 있다. 전남 보성에서 출발한 29번 국도가 이리저리 356.196㎞를 달리다가 여기에서 끝난다. 그 뒤쪽 작은 산, 해발 152m짜리 황금산을 찾는 외지인이 하도 많은 탓에 길 없음 표시를 그리 해놓았다. 산이되 바다와 맞닿고, 서해이되 전혀 서해답지 않은 바다다.

#용들의 전쟁터 황금산

황금산이 있는 독곶리는 조기 어장으로 유명했다. 역시 조기로 유명한 연평도까지 직선거리로 100㎞가 채 안 되는 탓에 요런 전설이 남아 있다. 400년 전 궁사 박씨 꿈에 황룡이 나타나 이리 말했다. "연평도에 있는 청룡이 조기 떼를 연평도로 끌고 가려 하니, 죽여 달라." 다음날 황금산 상공에서 용 두 마리가 전투를 벌이는데, 박씨가 날린 화살이 황룡을 꿰뚫고 말았다. 황룡은 "억울한 건 없으나, 장차 닥칠 이곳 어부들의 빈곤이 한스럽다" 하고 죽었다. 그래서 산꼭대기에는 조기 어장 부활을 꿈꾸는 임경업 장군 사당이 서 있다. 그럼 화살 맞은 황룡은 어디로 갔을꼬.

진달래 만개하고 새싹 즐비한 오솔길을 걸어서 파도 소리 따라 가파른 길을 내려가면 자갈 해변이 나온다. 해변은 모래나 갯벌이 아니라 주먹보다 더 큰 돌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눈을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기경(奇景)이 시작된다. 높이 10m가 넘는 아치형 바위가 바다로 향해 있다. 일명 코끼리 바위다. 머리부터 코까지 코끼리와 똑같다. 설치돼 있는 밧줄을 잡고 바위를 넘으면 놀라워라! 용들이 떼로 전쟁을 벌이는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산에서 내려온 절벽은 창을 꽂은 듯 날카롭기 짝이 없고 해변으로 뻗은 바위들도 곡선은 전무(全無)하다. 검붉고 누런 바위는 햇빛에 두런두런 빛난다. 끝이 아니다. 언덕을 넘으면 해변 끝나는 곳까지 온통 기암과 절벽이고 기암마다 머리에는 소나무들이 뿌리를 박아놓았다. 넘는 언덕마다 그러하다.

서산 황금산과 소금장수 강경환
큰 바위와 절벽 사이 등산로를 넘으면 또 용들이 꿈틀거린다. 이번엔 더 크고 더 격렬하다. 좁은 길 끝을 넘어서면 아예 길이 없어지고 파도가 절벽을 직면한다. 그나마 쉬운 등산로는 오른쪽 산길로 가면 나오지만 내친김에 절벽을 네 발로 타본다.

이제부터 전투력 충만한 용이 용수철처럼 몸을 구부리며 날아갈 준비를 한다. 모퉁이를 돌면 또 건너편 가파른 절벽에 밧줄이 보인다. 밧줄 있는 곳까지는 또 길이 없다! 어렵사리 절벽을 기어올라 부들부들 떨면서 건너편을 엿본다. 천 길 낭떠러지 아래 건너편에서 해식동굴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노려본다. 인간이 엿볼 수 있는 전투 현장은 여기까지다. 힘 빠진 다리를 끌고 코끼리 바위로 돌아온다. 그리고 산길을 다시 오르면 해식동굴이 있는 곳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돌아오는 갈림길에서 자동으로 한마디 튀어나온다. "등산 한번 제대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웅도로 간다. 산에서 나와 서산 대산 읍내에 다가가면 오른쪽으로 '웅도리'라는 파란 팻말이 나타난다. 섬은 하루에 두 번 문을 연다. 시멘트 포장도로는 물이 빠질 때에만 열린다. 한 바퀴 도는 데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작은 섬이다. 개발이 전혀 되지 않았고, 그래서 옛것이 그리운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는 섬이다. 집집마다 울 밑에 수선화를 심어놓았다. 이방인들은 이미 잊어버린 지 몇백년은 될 옛 추억과 향수와 그리움이 섬에 남아 있다.

#장엄한 소금장수 강경환

웅도에서 다시 큰길로 나와 대산읍으로 가면 오른편 소머리국밥집 골목길 끝에 염전이 나온다. 그 중 하나가 부성염전이다. 주인은 강경환<아래 사진>. 2년 전 나라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사람이다. 고즈넉한 염전 풍경 감상도 좋지만 이 사내가 가진 인생 이야기도 이번 여행의 큰 요소다.

강경환은 10대 때 발목지뢰로 두 손목을 잃었다. 이러구러 인생살이 끝에, 본인이 '손몽둥이'라 부르는 그 두 팔로 염전을 일군다. 그리고 10년 넘도록 염전에서 나온 소금을 몰래 혼자 사는 노인들 집앞에 던져놓고 가다가 몇 년 전에 들켜버렸다.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이라서 나오는 돈도 다 거부하고 그렇게 살다가 들켰다. 훈장은 그 대가다. 기경을 구경하고 섬에서 옛 정서를 느꼈다면 이제 소금장수 강경환을 만나서 손 몽둥이 악수하고 감동하시라. 짧은 하루, 진한 여행이었다.

(수도권 기준)①황금산: 서해안고속도로 송악IC→석문방조제→대호방조제→독곶리 마을 29번 국도 끝 지점에서 왼쪽 작은 길 ②황금산~웅도: 황금산에서 나와 29번 국도 독곶1교차로에서 '서산, 대산' 방면 우회전→38번 국도 대산교차로에서 오지리 방면 우회전→29번 국도 대산읍 못 미쳐 오른쪽에 웅도리 이정표 보이면 우회전 7㎞ ③웅도~부성염전: 29번 국도로 나와 우회전, 읍내에 들어서서 오른편에 소머리국밥집 보이면 골목으로 우회전, 갈림길 나오면 오른쪽 길로 2㎞. 부성염전(041-663-8890)은 맨 끝이다. 주소는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영탑리 840.

황금산 입구에 즐비한 가리비집들. 다 비슷비슷하다. 덕수네가리비(041-667-7513) 등. 해물칼국수 7000원, 가리비구이 2만원 등.

●서산시청 문화관광과 (041)660-2498

※더 많은 사진과 글은 블로그 seno.chosun. com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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