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釀造(양조) 기술 배우러 와인 회사 갔더니 6개월 동안 문학·철학만 묻더라고요"

'페트뤼스(Petrus)'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와인 중 하나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결혼식과 대관식에 쓰였고,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재클린 여사가 즐겨 마셨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이기도 하다. 병당 평균 수백만원에서 빈티지에 따라 수천만원까지 호가한다. 명성은 널리 퍼졌지만 정작 마셔본 이는 드물어 '전설의 와인'이라 불리기도 한다. 장 클로드 베루에(Berrouet·71)는 페트뤼스를 전설로 만든 이다. 1964년부터 44년 동안 페트뤼스 양조책임자를 지냈다. 2008년 은퇴한 뒤에도 페트뤼스에 조언을 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베루에를 지난 8일 서울 인사동에 있는 한식 퓨전 레스토랑 민가다헌에서 만났다.

베루에가 페트뤼스 양조 책임자가 된 건 약관 스물두 살 때였다. 보르도대학 양조학과를 갓 졸업한 그를 양조 책임자로 발탁한 건 페트뤼스 소유주였던 고(故) 장 피에르 무엑스(Moueix·1913~2003)였다. 베루에는 "6개월 동안 매주 화요일 무엑스씨와 만나 1시간씩 미술과 문학, 철학, 음악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6개월은 '장기(長期) 면접시험'이었다. "와인 양조 기술에 대해서는 한 번도 묻지 않았어요. 갑자기 무엑스씨가 '페트뤼스에서 일하겠나'라고 물어 놀랐어요. 1964년 9월 15일이었습니다. 엿새 뒤 첫 포도 수확을 했어요. 잘 만드는 건 고사하고 사고만 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싶었죠."

베루에는 "훌륭한 와인을 만들려면 철학이 먼저고 테크닉은 그 다음"이라고 했다. "위대한 와인에는 만드는 이의 철학이 담겨 있어요. 그땐 몰랐지만, 무엑스씨는 제가 자신과 와인에 대한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지를 보려 했던 것 같아요. 그런 덕분인지 무엑스씨와 충돌이 없었어요."

그는 "와인메이커란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은 역할"이라고 말했다. "지휘자에 따라 똑같은 곡(曲)의 연주도 달라집니다. 작곡자의 원래 의도를 살리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야 뛰어난 지휘자 같아요. 마찬가지로 와인이 생산되는 땅과 포도 품종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자기 개성을 보여야 뛰어난 와인메이커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여전히 와인을 만든다. 페트뤼스에서 가까운 라랑드포므롤 지역의 샤토 사미옹(Chateau Samion)과 고향인 프랑스 남서부 바스크 지방에 에리 미나(Herri Mina)라는 작은 포도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아들 올리비에는 페트뤼스 양조 책임자로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

와인이 대중화됐지만 여전히 한국에는 '어려운 술'이라는 인식이 있다. 특히 페트뤼스처럼 비싼 와인에 대해선 그렇다. 베루에는 "그냥 마시라"고 했다. "너무 집중하지 마세요. 집중하면 뇌세포가 활동하면서 오히려 와인을 느끼지 못해요. 와인이 좋고 나쁜지 평가하기보다는 개성을 즐기세요. 와인에는 와인 산지가 담겨 있어요. 와인병을 따는 건 그 지역으로 떠나는 여행입니다. 저마다 특성이 있기에 맛의 즐겨움, 여행의 재미가 있는 것이지요."

페트뤼스 양조 책임자는 매년 소유주로부터 12병을 받는다. 그는 "나도 마시고 아들들도 나 몰래 마셔서 꽤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몇백 병의 페트뤼스가 남아있다"면서 "좋은 친구들과 함께 마신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