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으로 들어갔다, 갤러리로 나왔다

"드륵! 드르륵! 드르르르르륵!"

7일 오전, 굉음이 울렸다. 33㎡(약 10평) 남짓한 책방은 귀를 째는 기계음으로 진동했다. 공사 인부가 드릴로 낡은 벽을 깊숙이 쑤시자, 벽돌 조각이 맥없이 후두둑 떨어졌다. 허물어진 벽돌의 이중조적(組積) 너머로 새하얀 갤러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건축가 조병수(56·조병수건축연구소 소장)씨가 소음에 맞서 고함을 질렀다. "책방과 갤러리 간 벽을 허물어 서촌의 '소통 통로'로 만들 겁니다! 앞길과 뒷길, 서점과 갤러리, 사람과 사람, 과거와 현재가 섞이는 그런 곳으로 말이죠!"

이곳은 '서촌(西村·경복궁 서쪽마을)'으로 불리는 서울 종로구 창성동의 한 대로변. 이날은 건축가 조병수씨의 최근 작업인 건축 전문 갤러리 '온그라운드(On Ground)' 마무리 공사가 있던 날이었다. 조씨는 '이외수작업실' '땅집' 'ㅁ자주택' '트윈트리' 등을 설계한 건축가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작품 '온그라운드'를 완성한다면서 정작 이웃 책방 '가가린'의 벽을 허물고 있었다.

그는 "대로변에 위치한 헌책방과 뒷골목에 위치한 갤러리의 벽을 일종의 '지름길'로 연결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서촌은 골목이 생명인데, 대부분의 사람이 큰 길가에만 머물다 가죠. 그런 사람들을 골목 구석구석까지 끌어들이자는 시도예요."

'온그라운드'부터가 서촌의 재생을 목적으로 개조한 건물이다. 건축가는 1930년대 지어진 일제강점기 적산가옥(敵産家屋)을 사들인 뒤, 약 8개월에 걸쳐 평소 꿈꾸던 건축 갤러리로 개조했다. "때마침 동네 책방처럼 즐겨 찾던 '가가린'을 운 좋게 인수하게 됐고, 비슷한 시기 책방 뒤편 적산가옥도 새 주인을 찾고 있단 사실을 알게 된 거죠."

"있는 것을 창의적으로 바꿔보자고 집중했죠. 우선 북향(北向)이라 집이 어두웠기 때문에 기와를 제거하는 것에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지붕을 걷어내니 밑에 드리워진 목재 지붕 선이 무척 아름다웠죠. 그 뼈대는 그대로 두되, 눈·비를 막고 자연광을 끌어들이기 위해 유리 지붕을 덮었습니다."

책방 벽을 허문 것에 대해 건축가는 "단순한 이웃 간 교류가 아니라, 책방과 갤러리란 기능적 통합, 대로와 골목길이란 공간적 통합을 통해 지역 전체가 상생(相生)하는 건강한 건축을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졸지에 개조 대상지가 된 헌책방의 운영자 역시 "갤러리 손님들도 우리 가게에 들르지 않겠느냐"며 좋아했다고 한다.

이렇게 허문 '서촌의 지름길'은 높이·폭 약 2m짜리 열린 통로다. 건축가는 허문 벽돌을 방금 떨어낸 듯한 느낌이 들게 거칠게 그냥 뒀다. 두 건물 간 '합방(合房)'은 오는 16일 갤러리 '온그라운드' 개관일부터 만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가가린'에서 출발해 '온그라운드'를 거쳐 미처 가보지 못했던 서촌 골목 구석구석의 갤러리들에까지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건축가는 "이번 '벽 허물기'를 계기로 서촌 골목길이 살아나고, 사람들도 진정한 소통에 대해 고민해봤으면 한다"고 했다.